행복지수 최고(4.26)
여느 때와는 다른 풍경이다. 시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며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 세안을 마쳤어도 며느리가 들어오는 시간엔 얼굴을 찡그리고 기운을 뺀 다음 다시 이부자리로 들어가 눕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데 오늘을 복권이라도 당첨된 표정이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시네요?” 인사는 물음을 대신하기도 한다.
“어제 저녁 애비가 전화했더라. 잘 지낸단다. 목소리 듣고 나니 하늘을 날듯이 기분이 좋다.”
저 정도일지는 몰랐다. 아들이 걱정된다며 울먹거릴 때가 다 되었다싶어 안부전화 좀 드리랬더니 그런 모양이었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아들의 몇 마디 목소리에 저토록 행복해질 수 있다니. 남편은 안부 전화도 드리라고 닦달을 해야 겨우 버튼을 누른다. 세간에서 말하는 대리효도의 전형적인 모습이 우리 집에 있다. 그가 어머니와는 다르게 관계에 인색한 것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왜 모를까마는 다른 자식들과 차별할 정도의 마음은 버겁다. 누나와 동생들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니 그 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짝사랑은 안타까울 정도로 간절하다.
나 또한 자식을 키우는 부모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지만 누구를 더 사랑하고 덜하지는 않다. 물론 어머니와는 시절이 다르니 꼭 같지만은 않겠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정도를 넘는다. 맏이에 대한 마음이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것과 차별은 엄연히 다른 맥락이다. 게다가 자식의 표정에 따라 울고 웃는 게 어미라 해도 다 자라 독립하고 나면 조금은 무디어지기 마련인데 어째 더해지는 것만 같다. 요즘 세태에서 시어머니의 그런 행동은 아마 며느리에게 소박맞을 짓일 게다.
아리고 저린 마음은 가슴 저 깊은 곳에 묻어두고 가끔 열어보며 추억하는 것은 어찌 말릴까마는 매일매일이 자식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면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그만 마음을 내려놓을 만한데도 어머니의 마음은 여전히 스토커에 다름없다. 당신을 위해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루 세 끼 식사를 챙기는 며느리에게는 그 마음 한 쪽 귀퉁이도 잘라 줄 생각이 없다. 귀하고 귀한 아들이 있으니 부록처럼 따라오는 며느리가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다 아들 덕이다.
기분 좋을 때 읊는 시조 한 수가 어머니 방에서 흘러나온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왜 저 시일까 늘 궁금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분좋다'는 시그널로 알아들을 뿐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금기다. 모르는 게 약이고 알면 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