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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27. 2023

나의 일기

일상


  정기검진 받으러 가는 남편을 챙기느라 새벽4시에 일어났다. 식사는 병원에 도착해서 하겠다며 토마토 주스와 배 몇 조각을 먹고 길을 나섰다. 어머니들을 돌봐야하니 동행하지 못하고 혼자 보내는 마음이 어수선하다. 아직 많이 걷지도 못하는데...


  피로만 한가득 품은 아침이다. 방문을 열자 지린내가 코를 잡게 한다. 공기청정기도 소용없다. 어제 낮에 소변을 보지 않았던 엄마는 기저귀가 흠뻑 젖었다. 뜨거운 물을 준비하는 동안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시킨다. 서늘한 공기가 주방창문으로 들어와 지린내를 베란다 밖으로 밀어낸다. 


  오른쪽으로 누우라는 주문을 의식한 듯 엄마의 몸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침대를 사용한 면적은 지금껏 왼쪽으로 누웠었다고 고자질한다. 그래도 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니 잔소리의 효과가 생긴 것이리라. 


  기저귀를 갈 때는 열었던 창문을 닫고 거실과 연결된 방문도 닫는다. 아무리 딸이지만 두 다리를 벌리고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늘한 공기를 차단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도 자꾸만 다리를 모으는 탓에 오늘처럼 피곤한 날엔 짜증이 나기도 한다.


  뒤처리를 하고 나오자, 자는 척하고 누웠던 시어머니가 일어나 앉았다. 인기척을 느꼈는데도 깨워 인사하지 않는 며느리를 기다리다 지친모양이다. 잘 주무셨냐는 인사에 언제나처럼 ‘오냐’ 한다. 엄마가 기저귀를 사용하면서부터 자는 척 하는 시어머니 깨우는 일을 뒤로 미루었다. 깨운 뒤에 한동안 엄마 방에 들어가 있으면 혹여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엄마의 기저귀 사용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이기도 했다. 


  은근히 경계하는 마음이 두 분 사이에 존재했다. 동갑이기도 했으니 경쟁하는 마음도 있으리라. 서로의 자존심에 흠이 되는 것은 감춰주는 것이 마땅하다. ‘산 사람이 저렇게 바짝 마른 건 처음 본다.’ 친정엄마를 걱정한다는 시어머니의 말이다. 당신은 걱정인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마음 상한다. ‘사돈은 어째 나날이 징징대누.’ 시어머니의 투정이 못마땅한 친정엄마의 푸념이다. 내 입장에선 도긴개긴인데, 당신들의 들보는 느끼지 못하고 상대방의 티만 거슬리는 모양이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니 피로가 더 몰려든다. 남편도 없으니 집안일은 미루고 여기서 한숨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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