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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Dec 20. 2021

해파랑길

넷째 날


  슬그머니 침식해 드는 무력감으로 며칠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모든 시간을 짜진 일정에 따라 보내던 습관이 깨졌다. 제 풀에 꺾인  몰려든 내적 갈등 앞에 나는 백기를 들었다. 스스로 시간을  관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오만이 무너진다. 호미곶을 눈앞에 두고 길을 나서지 못했다. 장마가 올 거라는 기상청 예보를 듣자 덜컥 겁이 난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장마가 지나면 무더위가 몰려올 것이다. 남은 길을 무더위 속에서 걷을 자신이 없다. 오늘은 기어이 호미곶에 닿아야 한다.

  오후에 잡힌 문예대 수업 전에 호미곶까지의 여정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을 나선다. 이번엔 딸아이가 동행을 자처한다.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여름의 해는 벌써 세상을 훤히 밝히고 있다. 수평선 위를 떠오르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두어 시간 전에 기상해야 했다. 오후부터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뒷받침하듯 하늘엔 진회색 구름이 가득하다. 그나마 더위는 면할 것 같아 다행이다. 

  대동배에서부터 시작되는 해안 길은 무덤덤하다. 매번 다른 느낌으로 설레게 했던 길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 구간엔 모래사장도 자갈밭도 없다. 해안선이 바로 도로다. 산자락이 깎여 길을 만들고 길 아래는 바다다. 오가는 자동차를 피해 가며 걷는 일이 불편해지는 즈음, 길게 늘어선 마을의 지붕 위가 온통 샛노랗게 빛난다. 모감주나무 꽃이다. 모감주나무는 약재로도 쓰이고, 잎과 꽃은 염색 재료로도 사용된다. 열매로는 염주를 만든다고 한다. 대동배는 모감주나무 자연 군락지다.

  이곳은 현재까지 알려진 모감주나무(천연기념물 제371호) 군락지 중 크기와 면적 개체수에서 최대이다. 영일만의 남쪽 해안가 일대의 경사면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120∼130년생의 큰 나무를 비롯하여 약 300주 정도가 자라고 있다. 관목층의 병아리꽃나무와 함께 생태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어디를 가나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바람이 불자 노란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고 나무 아래 있는 지붕은 노란 칠을 한 듯하다. 아쉽게도 병아리꽃나무는 보지 못했다. 주의를 기울여 찾아볼까 했지만 자꾸만 짙어지는 구름층을 보니 마음이 급해 길을 재촉한다.

  구만리. 어감이 주는 느낌이 아주 묘한 마을이다. 호미곶의 끝에 자리한 이 마을의 이름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범꼬리 부위 지형이 굽이친 곳이란 뜻,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그만이란 뜻, 아주 멀고 까마득한 곳이라는 뜻 등의 다양한 어원을 갖는 곳이다. 한자의 쓰임으로는 거북이가 많이 서식하던 곳이라 하여 龜滿(구만)이란 뜻, 구릉지가 많다는 丘滿(구만)이란 뜻도 있다. 영일만을 감싸는 남쪽 끝자락이다 보니 마을은 북쪽을 향해 열렸다. 호미곶 끝에서 보는 일몰은 특별하다. 까마득히 포항 시가지 너머로 지는 해는 얼핏 바다로 해가 지는 듯 보여 서해의 일몰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내 밥 먹고 구만 허릿등 바람 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지금 방송국 송신소와 대보면사무소가 들어선 언덕을 허릿등이라 하는데 북향으로 열린 들판에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물론 샛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다. '봄 샛바람에 목장 말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한다. 그 말들은 아마도 장기목장성에서 자랐던 말을 뜻할 터이다.  1905년 마지막 말 300마리를 일제에 징집당할 때까지 목장은 운영되었다고 한다.

  구만리는 포항 수필문학의 산실이다.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중략) 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흑구 선생의 ‘보리’다. 심심해진 해안선을 견디며 걸었던 것도 수필‘보리’의 현장을 보려던 기대감 때문이다. 문학의 불모지였던 포항에 보리의 움을 틔운 선생의 자취는 구만리의 작은 문학관과 문학을 사랑하는 포항의 문인들 가슴에 남았다.

  해안선이 자연에서 인공으로 치환된다. 갖가지 형태의 펜션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다. 곳곳이 공사 중이다. 화려하고 깔끔한 건물들 뒤로 오래된 풍경들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대보 중심으로 들어서자 좁은 골목 안쪽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작은 우체국이 예쁘다. 그곳으로 들어가 창가에 기대어 엽서라도 한 장 쓰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옛 건물들은 무너지거나 골목 뒤편으로 밀려나고 산뜻한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것은 함께 늙어가는 동병상련이 아닐까 싶다.

  모퉁이를 돌자 바다에 우뚝 선 상생의 손이 먼저 보인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았던 손가락 끝의 갈매기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다가가자 맞은편 육지에 선 손이 보인다. 너무 자주 보아서 그런지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자연적인 것에 마음이 끌린다.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해도 인공의 것이 주는 감동은 일시적이고 여운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이 주는 것은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잔잔히 다가오는 감동의 물결은 긴 파장을 일으키며 가슴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음미한다.

  호미곶의 가장 뾰족한 구간을 돌았다. 비록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해안선을 따라 걸은 것에 불과하지만 가슴 한쪽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하얀 포말을 머리에 이고 달려오는 파도가 나의 작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기념관의 전망대에 올라 동해를 내려다본다. 영일만을 벗어나 다시 대양을 향해 달리는 거대한 물결에 심장이 요동친다. 아직 더 걸어야 할 길이 보인다. 또다시 숙제를 묵혀놓은 어린 아이처럼 조바심치다가 어느 날 홀연히 길을 떠나겠지. 푸른 구릉을 지나는 바람이 낸 길을 더듬는다. 오늘은 이곳에 닻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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