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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Dec 22. 2021

쌀과 감자 그리고 어머니

보릿고개를 넘다


  저녁밥을 짓느라 쌀을 씻는 중에 시어머니께서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린다. 수돗물을 잠그고 뒤돌아 뭐라 하셨냐고 여쭈었다. ‘감자를 좀 긁을까?’ 감자 드시고 싶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쌀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꾸 쌀밥만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라고 걱정을 한다. 그새 쌀통을 들여다보신 모양이다.

  감자가 드시고 싶으면 삶겠다고 여쭌다. 어머니는 먹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재차 강조한다. 쌀이 곧 들어올 거라 말씀을 드렸는데도 영 편치 않은 눈치다. 어머니는 짧은 순간,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셨던 모양이다. 얼마나 오래전으로 돌아갔을까? 양식을 아끼기 위해 감자나 고구마를 삶아 부족한 밥을 때우던 그 시절.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구박받던 딸만 일곱이었던, 가난이 온 집안에 거미줄처럼 엉겨 붙은 그때로.

  아파트라는 공간은 단출한 살림이 제격이다. 광에 쌀을 몇 가마니씩 저장하던 옛 시골의 살림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농사를 짓지 않는 집은 쌀독 하나 채우는 정도만 저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시대에 맞춘다기보다 좁은 집에 꾸역꾸역 밀어 넣어 쌓는 것이 싫다. 비우고 채우는 것이 내 방식이다. 들여다보니 쌀통에는 사나흘 치의 쌀이 남아있다.  

  안심을 시켜드리는 말은 무의미하다. 어머니는 이미 듣는 일을 그만두셨다. 인지 장애가 생기기 이전부터도 다른 사람의 말보다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했던 분이다. 그 힘든 시절에 혼자 네 남매를 키웠으니 각박한 삶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 삶의 굴곡을 넘는 동안, 강직한 의지가 성격으로 굳었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장남, 큰 아들인 나의 남편 말만 듣는데 그나마도 성에 차지 않지만 참고 있다는 것이 표정에 역력히 나타나 보일 정도다.

  식사가 끝나고 잠들기 전까지 출출하면 드시라며 넣은 간식이 설거지도 채 끝나기 전에 빈 그릇으로 나왔다. 배가 불러도 먹을 것을 두고 보는 법이 없다. 그래서 소화불량이 잦으시다. 긴 겨울밤, 간식을 드리지 않자니 그것도 걱정이라 가볍게, 조금만 준비하는데 상황은 늘 마찬가지다. 하루 세 끼, 밥 한 공기와 국 한 대접은 기본이다. 그 기본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반찬은 사치라고 여기는 통에 상 차리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김치 포함해서 셋 이상이면 헤픈 며느리 걱정에 숟가락 든 손이 무겁다.

  도시로 나오기 전에 냉동실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그 안에 얼려놓았던 음식이며 재료들이 죄다 상해서 버린 것을 당신 눈으로 보고 애통해했으면서도 천연스럽게 얼려놓은 쑥떡을 챙겨 오라는 어머니. 어제 했던 당부는 기억에도 없다면서 시골집 떠나온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아흔이 된 어머니의 기억은 순간 이동하는 ‘워프’를 타고 자유자재로 들고난다. 팔십 년 전의 일과 오늘의 일을 섞어놓고, 그제 일은 까마득하고 사십 년 전 일은 어제 일처럼 선하다. 그 표현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잘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나이에 비해 너무도 정정한 어른이다 할 것이다.

  쌀통에 쌀을 채웠다. 한 포를 사면 딱 맞게 들어가는 쌀통이라 포대기에 조금 남았다. 바닥에 깔린 쌀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낼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냥 넘길 수 없다. 챙겨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쌀통을 들여다본 어머니가 또다시 감자 깎을 걱정을 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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