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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an 06. 2022

액땜

새해를 맞으며

  지난 한 해 동안 여기저기 많이도 아팠다. 수술도 했고, 시술도 했고, 물리치료며 각종 약 복용까지 흔히 하는 말로 종합병원 신세가 됐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러고도 살아야 하나 싶을 만큼 갖은 병치레로 심신이 나약해졌다. 그래서 다짐한 것이 새해는 아프지 말고 다부지게 튼실하게 살자였다. 그런데 어쩌랴. 새해 첫날부터 나는 몸살을 앓았다.

  섣달 마지막 한 주는 무척이나 바빴다. 몸도 마음도 분주하여 작은 짜투리 같은 틈도 내기 힘들었다. 얼마전부터 갑자기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음은 얼어붙고 어중간하게 걸치 탓에 마음만 힘든 동인지 출간도 나를 억눌렀다. 그런 참에 마지막 남은 한 주에 어린이집 방학을 맞은 손주와 함께 아들네 식구들을 맞았다. 두 돌을 넘긴 손주와 팔 개월 된 손녀, 그리고 육아에 지친 아들은 평화로운 연말연시를 불가능하게 했다.

  정신없이 며칠이 지나고 금요일 저녁 며느리가 오자 꼭꼭 접어 눌렀던 긴장이 풀어졌는지, 믿을 구석이 생긴 탓인지 다음날 아침인 새해 첫날에 일어나지 못했다. 모든 음식냄새가 역하고, 감당키 힘든 한기가 몰려왔다.  바닥을 절절 끓게 해도 소용이 없었다. 몸 한가운데가 뻥 뚫린 듯 허하고 추웠다. 핫팩을 가슴에 안고 두꺼운 이불을 두 개씩이나 덮고서야 잠들수 있었다. 고사리같은 손녀의 손길에서조차 통증을 느꼈다. 손주 예쁜 것도 내 몸이 성할 때 인듯 만사가 귀찮았다.

  길 건너 웅크리고 기다릴 어머니들 생각에 겨우 일어나 좀비처럼 걸었다. 미리 장만해둔 국과 밑반찬으로만 상을 차렸다. 하루 세 번 끼니를 챙기기 위해 왕복하는 골목은 북극의 빙하 위를 건너는 듯했다. 대신해 주겠다는 남편의 말을 기다렸지만 한번도 건네지 않아 서운하고 서러웠다. 병가도 휴가도 낼 수 없는 일. 하지만 어찌할꼬, 어머니들에게 남은 것은 삼시 세끼뿐인 것을.

  셋째 날 아침이 되자 겨우 몸을 추스렸다. 서둘러 돌려보낸 아들네가 그제서야 마음에 걸렸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들 땜에 몸살 난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에 그리 보내 미안하다는 말로 답을 하고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아프지 말자던 새해 목표는 첫날에 깨져버렸지만 새해를 맞는 액땜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 해의 무병을 위한 액땜. 그래, 올해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 근본도 없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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