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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한 사랑방 Aug 11. 2023

때로는 엉망진창 여행이 가장 기억 남는 법

날 것으로 파닥거리던 그 시절 홍콩 여행

혼자서 4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 있다. 매번 혼자서 무슨 재미로 여행을 다니냐, 그리고 여행지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냐 라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엉망진창 홍콩 여행'이라고 대답한다. 혼자 떠났던 첫 여행이기도 하지만, 정말 엉망진창 대환장 파티 여행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MBTI가 'J'지만 그 20대 중반 나는 극 'P'였고, 특히나 외로움을 정말 잘 타는 강가에 내놓은 애 같았다. 그 시절 지난하던 연애들을 반복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실히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겁이 많은 쫄보 기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라는 벽을 허물고 확장하고 싶다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겁게 일렁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해외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물론 이를 들은 친구들은 '네가 혼자 해외여행을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며 대다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 그렇단 말이지. 그럼 더더욱 무조건 가야겠군' 하며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당시 같은 회사에 다니던 동료가 내 비장한 계획을 듣더니 그럼 무조건 홍콩이라는 거다. 치안 좋고, 교통편 좋고, 가깝기 때문에 난이도면이나 부담감면이나 모두 베스트 중 베스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비행기표부터 끊으라고 재촉했다. 비행기표를 끊으면 반은 한 거라고. 그럼 가게 되어있다고. 동료의 말에 힘입어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몇 번 눈팅 끝에 결국 표를 끊었다. 티켓을 끊은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해냈다, 이 쫄보 중에 쫄보가 드디어 한 건 하는구나 싶어 묘한 성취감까지 솟구쳤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 시절 아주 즉흥적인 'P'였다. 살면서 의식주 중에 '식(먹는 것)'이 가장 후순위에 있던 사람이다. 그래서 원래 맛집 같은 건 찾아보지도 않는 1인이었다. 지나가다 내가 그때그때 구미가 당기는 메뉴로 골랐다. 그렇듯 해외여행을 기획하면서 맛집 같은 건 찾아보지도 않았다. 여행을 계획할 때도 주요 스폿을 고르고, 오고 가는 거리와 교통편 정도만 체크했다. 숙소를 예약할 때가 가장 압권인데, 바로 숙소가 연박이 된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다. 그전에 국내여행만 다녔는데, 늘 친구들과 1박 2일로 다녔기 때문에 연박을 해보지 않아 당연히 연박이라는 게 가능할 거란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세상 바보 천치가 따로 없다.


그래서 정말 우습게도 4박 5일 홍콩 여행 중 4박을 무려 각기 다른 숙소를 예약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연박을 해본 적이 없어 연박이 가능한지 몰랐다로 귀결되는' 생각을 하던 그 시절의 나. 심지어 홍콩은 서울에 1.8배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거기가 거기인 거리이니 더더욱 여러 숙소를 잡아 여행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당시 9월 초에 도착한 그날의 홍콩 공기가 지금도 선연하다. 덥고 습한 눅눅한 홍콩의 아우라.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오는 길 내내 지금 이 홍콩 길을 밟고 있는 나 스스로가 대단하게 자랑스러워 혼났다. 내 손으로 내 머리를 토닥거리며 잘했다, 멋지다 셀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첫날 저녁 야심 차게 혼자 bar를 찾아갔다. 화려한 조명에 수많은 인파가 거리에 가득했다. bar 앞까지 갔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부끄러울 게 뭐 있어? 이대로 안 가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몰라' 라며 내적 목소리가 나를 계속 채근했다. 숙소까지 다 와서 '그래 해보는 거야!' 하며 다시 bar로 향했다. 비장한 각오를 끝낸 발걸음은 가볍다 못해 당차기까지 했다. 그렇게 도착한 bar에서 모히토 한 잔까지 마시니 내가 정말 힙한 홍콩 여행자가 된 듯한 무드에 잔뜩 취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근처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온 또래로 보이는 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코드가 맞는 여자 3명과 함께 다른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로 통성명도 하고 여행 일정도 공유하며, 홍콩 거리의 뜨거운 열기도 함께 나눴다. 그중 학생이라는 제일 어린 친구가 나에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오늘은 OOO 호스텔, 내일은 침사추이 OO 게스트하우스요' 했더니

나머지 친구들의 모두 응? 하는 표정으로 의아하게 날 바라보았다.

'언니 그건 강남에서 하루 자고, 잠실에서 하루 자는 샘 아니에요?'

모두 폭소하며  왜 그렇게 숙소를 예약했냐고 물어보았다.


가장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뭐야 연박이 된다는 거야?

그렇게도 숙소가 예약되는 거였다니...

다들 나에게 이 더위에 체크인 체크아웃하다 체력 다 빼겠다며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말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힘든 여행 일정이었다. 전 날 술 먹고 늦게 잠이 들어 늦잠을 좀 자고 싶어도 체크아웃 시간을 맞춰야 돼서 서둘러야 했다. 그 더운 여름에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 거리며 4일 동안, 즉 네 번이나 반복하는 건 정말 곤욕이었다. 체크아웃하고 다시 도시를 옮겨 체크인하면 기운이 다 빠져 오후에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자기도 했다. 체력보다 체크인, 체크아웃하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게 가장 아쉬웠다.


우당탕탕 홍콩 여행은 우습고 어이없어서 제일 기억에 많이 남기도 하고, 가장 비일상적인 경험이었기에 인상적인 최고의 여행으로 기억된다. 일상을 떠나 비일상을 느끼고 싶어 가는 게 여행이라 했던가. 그 어느 것 하나 내 계획대로 된 거 없는 비정형화된 '나 다 우면서도' '나답지 못한' 경험을 재차 마주하는 여행이었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구가 되고, 낯설고 어색할 것 같은 메뉴에도 도전해 보고, 걷는 걸 싫어하던 내가 굳이 걸어서 이동하며 거리를 만끽해 보고, 쫄보라서 컴플레인도 잘 못 거는 내가 가격 흥정도 해보고 말이다. 사소한 경험들이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나'를 깨부수는 기분이었다. 나를 마구 확장하는 듯한 기분은 짜릿할 만큼 흥분됐다.



 홍콩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다. 여행 준비 전 다른 부서에 여잘알(여행 잘 아는) 선배가 한 명 계셨는데, 그분이 다른 거 필요 없다고 구글맵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구글맵 보다가 길 모르거나, 사진 촬영 부탁할 때 늙은 할머니나 할아버지께 부탁하라는 거다. 그 한 마디가 내 여행을 관통하는 한 문장처럼 남아 두고두고 회자되고 하는데 이런 뉘앙스였다.

'누가 길 알려주는 척, 사진 찍어주는 척하다 핸드폰을 가지고 달아날 수도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보다 느려서 쫓아가서 잡을 수 있다고' 그리고 대부분 그 나라 어르신들은 오지랖이 넓어서 사기 안 치고 세세하게 잘 알려준다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홍콩 여행 첫날 지하철역 입구가 보이지 않아 당황해서 무거운 캐리어 끌고 당황하다 선배님의 말이 생각나서 인상이 좋은 할아버지께 길을 여쭈어보았다. 그 할아버지는 자기는 대학교 교수라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예를 들면 1번과 2번 출구가 있는 데 가까운 건 1번 출구지만 거기 에스컬레이터가 없어서 짐 들고 내려가기 힘들다, 코너를 돌면 2번 출구가 있는 데 거긴 에스컬레이터가 있으니 따라오라는 거다. 약간 못 미더워 주춤거리며 교수라는 할아버지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분의 말처럼 2번 출구에는 편하게 내려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지하철 노선도가 있는 커다란 전광판 앞으로 데려갔다. 이 노선도를 찍어두라는 것이다. 당시 나는 홍콩 지하철 어플이 있었기에 노선도를 굳이 찍을 이유가 없었지만 그분의 성의를 생각해서 찍어야 할 것 같았다. '오케이 땡큐'를 외치며 사진을 찍었더니 그분이 '노노 풀 샷'으로 찍으라며 내가 사진을 찍는 걸 옆에서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그분의 말대로 이번에는 노선도가 모두 나오도록 풀 샷으로 찍었더니 엄지를 치켜들며 잘했다고 웃으셨다. 그래도 불안한지 내가 개찰구 안까지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뒤 돌아 갈길을 가셨다. 여잘알 선배님의 말씀이 이건가를 느끼며 뜨거운 감동에 심취했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나의 안위를 누군가 걱정해 줄 수 있다는 것. 자기의 소중한 몇 분을 낯선 이방인에게 베풀어주는 준다는 것. 작지만 메말라 있던 마음을 흔들어 깨우기 충분했다.


 그 이후 태국 방콕으로도 혼자 여행을 떠난 적 있다. 그 여행은 가장 무탈하고 계획대로 이루어진 평안한 여행이었는데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지 않는 여행지기도하다. 이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엉망진창이었지만 가장 순수하고 진지했던, 그리고 날 것으로 파닥거리던 그 여행이 최고의 여행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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