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of your colours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첫 아이의 첫 기관(어린이집) 선택.
반려인의 직업 특성상 이사가 잦다 보니 아이의 첫 기관을 고를 때 정말 고민이 많았었다. 지금 집에서 1년도 못 채우고 이사를 갈 예정이었기에 사실 어린이집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 대기를 미리 걸어두지도 않았다. 이때만 해도 나는 16개월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사오기 하루 전날 반려인의 파견이 급하게 결정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주말 부부를 하게 된 샘이다. 나는 연고도 없는 타 지역으로 이사를 오고, 며칠 뒤 반려인은 짐을 싸서 급하게 타 지역으로 파견을 떠났다. 괜찮다며, 아이와 잘 지낼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의연하게 보냈지만 막상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말로만 듣던 육아 우울증이 나에게도 머물다 간 시점이었다.
반려인의 빈자리는 예상보다 컸고, 막상 아이와 낯선 지역에서 적응하려니 거대한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반려인이 없으니 저녁을 간단하게 때우는 일이 잦았고, 새로운 집이 낯선지 아기는 유독 나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종일 떨어지는 않는 아기와 온종일을 녹여 내다보면, 저녁 8시쯤 아기를 재우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자정이 되도록 다음날 아이의 반찬을 미리 만들었다. 반려인은 항상 늦게 귀가하더라도 피곤한 몸을 일으켜 빨래를 개 주고, 어질러진 집안 청소를 거들어주곤 했다. 또 출근하면서 늘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 버려 주었다. 그의 빈자리가 빼곡하게 느껴져 혼자 많이 울곤 했다. 늘 아기와 함께 있는 건 나였기에 그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 몰랐었다. 늘 반려인의 몫이라 챙길 생각조차 못했던 음식물 쓰레기의 수고스러움은 고약한 냄새로 온 집안 티를 내던 날들이었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지자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다음 이사 전까지 아이를 위해서라도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겠다던 결심이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아이에게 더 부정적인 아우라를 방사하고 있는 꼴이었다. 욕심을 버리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찾아보게 된 아이의 어린이집.
뒤늦게 집 근처 유명한 어린이집을 찾아 입소 대기를 걸었지만 대기가 어마어마했다. 거리가 좀 더 있는 곳까지 물망에 두고 서치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며 3곳을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던 차에 지금의 숲 어린이집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을 보낼 때 저마다 중요시 여기는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다양한 놀이 활동, 자유로운 놀이 탐색에 중점을 둔 곳을 찾았다. 아이들은 놀이와 탐색을 통해 크고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는데, 이는 아이 스스로 주체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전'도 매우 중요하지만 안전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아이의 놀이나 탐색은 자연스럽게 차단될 수밖에 없다. 안전의 눈으로 바라보면 사소한 것들도 잠재적으로는 위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에 크게 위배가 되는 않는 선에서 아이의 놀이와 탐색을 장려해 주는 어린이집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 완벽한 어린이집은 없다는 말이 있듯 어디에 방점을 찍고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았다. 그때 우연히 알게 된 '숲 어린이집'. 이런 나의 정체성과 유사한 방향성을 가진 어린이집이 바로 지금 아이가 다니는 '숲 어린이집'이었다.
이 어린이집의 독특한 신념은 상담가던 날 입구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지만 제법 경사가 높은 언덕이 있는 게 아닌가. 속으로 '이렇게 경사가 있는 데 애들이 불편해서 어쩌지, 위험한 거 아닌가' 라며 툴툴거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부분을 언급하기도 전에 속 시원하게 먼저 설명을 해주셨다. '아이들이 걷기 편하고 안전한 길 만이 좋은 건 아니라고'.
원으로 들어가려면 이 언덕을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처음 입소한 아이들은 이 언덕을 오르기 힘들어하고, 내려갈 때도 내리막길에서 속도가 붙어 넘어지기도 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얼마 뒤면 바로 이 관문을 헤쳐나간다고 한다. 원장님은 처음 들어온 아이들에게 엄지발가락에 힘을 단단하게 주고 내려가라고 알려주셨다. 늘 평지만 다니는 아이들에게 이런 언덕은 대근육 발달에 매우 좋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잡고 오르내릴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양질의 기회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늘 장화를 신는다. 모래나 흙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장화를 신고 걸으려면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므로 다리 힘을 키우기 좋다는 것이다. 아니라 다를까 이곳을 다닌 지 5개월이 지난 아이의 다리는 놀랄 만큼 단단해졌다.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은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항상 바깥으로 나가 활동을 한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우비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느껴보고, 흐린 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도 듣는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숲으로 산책을 다녀오고 구슬땀을 흘리며 원으로 들어온다. 날씨는 둘러싼 환경일 뿐, 아이들의 일상에 지장을 주진 못한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활동하며 날씨에도 꺾이지 않고 굳은 마음과 몸을 만든다. 도심에서 제법 떨어진 작은 마을 어귀에 위치한 이곳은 가끔 다른 세상처럼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고 한다. 산들바람처럼 평온하게 왔다 자유롭게 흩어지는 평온한 일상. 그게 이 숲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들이다.
숲 어린이집 특성상 기본적으로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이 이루어진다. 이곳의 아이들은 꼬불꼬불한 길, 경사가 제법 있는 언덕을 지나 어린이집에서 운영하는 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과 화단도 있고, 근처 민가에서 일구는 작은 텃밭도 있다. 아이들은 상추를 직접 뜯어 원으로 가지고 와 햄버거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참외를 수확해 간식으로 나눠 먹기도 하고, 감자를 캐서 집으로 가지고 오기도 한다. 감자를 캐고 담아 온 가방을 위풍당당하게 들고 오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다.
그렇게 숲을 부비벼 다닌 덕분인지 꽤 하얀 피부였던 아이는 까무잡잡해졌다.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도 바깥 놀이를 아낌없이 하던 짬바인지 웬만한 더위에도 끄떡없이 뛰어다닌다. 오전동안 숲을 누비며 놀다 들어온 아이들은 저절로 배가 고파 밥도 매우 잘 먹고, 바로 낮잠에 곯아떨어진다. 자연은 누구의 소유 없이 자유롭게 제 자리를 틀고 있다. 내 것도 네 것도 없이 모두에게 자유롭게 제공되는 저마다의 풍경. 그 풍경을 눈에 담고, 새소리를 귀에 담으며 평온하게 뛰어다니다 보면 답답함도, 해소되지 못한 억울림도 없이 자연으로 흘려보내지는 건 아닐까 싶다. 이처럼 무해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이곳에서는 입소한 아이가 잠들기 싫어하면 '안 자'라는 말을 가르쳐주신다고 한다. 낮잠을 자기 싫으면 안 자도 된다고. 그런 아이가 있으면 자는 아이들과 분리된 놀이 공간이나 앞마당에서 선생님과 함께 논다. 그리고 놀다 자고 싶으면 자라며 옆에 낮잠 이불을 깔아주신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장독대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서 창가에 이불을 깔아 두고 자기도 하고, 신발장 옆이 시원하다며 문 앞에서 잠이든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졸리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고, 먹고 싶으면 먹는 자연스러운 선순환이 지켜지기 힘든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곳은 그 모든 게 자연의 흐름처럼 편안하게 흘러간다.
걱정도 많고, 육아 철학도 확고한 나라는 예민한 엄마에게 이보다 좋은 기관은 없었다. 나 역시도 시골에서 온 동네 뒷산과 강가를 벗 삼아 누비며 자랐다. 그때 내가 누렸던 경험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하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앞으로 얼마나 흙을 원 없이 만지고 새들의 지저귐을 귓가에 담을 수 있을까. 까마득하게 먼 미래에도 지금처럼 숲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작은 마을 어귀에서 피부가 까맣게 타도록 자연을 누비는 아이의 마음은 초록을 닮았다. 장화에 흙이 들어갈 정도로 가만히 열중하며 놀았을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은 노랑을 닮았다. 간식으로 나온 토마토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아이의 옷에 묻은 빨간 토마토 과즙을 보고 웃는 내 웃음은 빨강을 닮았다. 그 모든 게 사랑 그 자체인, 아이의 색깔들이 세상을 물들이는 날들. 나는 지금 내 생애 가장 행복하고 풍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