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을 사랑하는 반려인, 비전을 사랑하는 나
반려인을 처음 봤을 때 나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단하고 단정하되 다정한 결을 좋아하는 나로서 이 모든 걸 가진 지금의 반련인에게 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반려인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고,
우린 닮음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만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다른 부분을 정말 많이 마주해야 했다.
나는 다가오지 않는 미래 너머를 상상해 보고, 설계해 보고 나의 비전을 세우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이는 나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또 이 같은 일들이 나에게 끌어당겨올 때나 혹은 나의 노력으로 꿈꾸던 바를 실현시켰을 때 느끼는 효능감과 성취감도 매우 사랑한다. 나에게는 숨 쉬듯 편안하고 당연한 사유들이다.
반대로 남편은 극 현실주의형이며 효율을 사랑한다.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위치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그래서 현실감 없는 뜬구름 같은 소리를 질색하기도 한다. 어디 가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프로 일 잘 알' 소리를 듣는다.
ST형 반려인과 NF형인 내가 번번이 충돌을 맞이하며 서로를 바라보려고 노력 중인 결혼 3년 차. 나는 대화하다 보면 반려인에게 서운하고, 반려인은 나와 대화하다 보면 답답해진다는 얄궂은 아이러니를 느낀다. 요점만 간단히 말하는 걸 선호하고 그래야 이해가 빠른 반려인은,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까지 고민했고 생각했다며 길게 늘어놓는 담화 방식에 회로가 고장 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그의 말에 내 마음을 한 줄로 겨우 요약해서 말하면 그는 이런 반응이다. '그럼 애초에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왜 굳이 그런 말까지 한 거야? 어떤 게 너의 진짜 마음이니'라고. 그럼 나의 마음의 호수는 크게 일렁이며 혼란스러워지곤 한다. 그러게 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거지, 그의 말에 받아치려다 어느덧 서러움에 눈물 먼저 차곤 하는 나란 NF. 진정 F만 상처받는단 말인가.
NO. ST형인 반려인과 부단히 보폭을 맞춰가다 보니 나 못지않게 서러울 그의 그늘도 보인다. 나의 반려인은 본인이 힘닿는 데까지 가족의 안온한 삶을 지켜내려 정말이지 사활을 건다. 그런 그가 제일 못 견딜 만큼 힘든 건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인내와 노력에 반하게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라고 한다. 내가 공감이 필요할 때 ST형 사고를 가진 그는 나름의 이해 번역기를 돌려 공감 반응을 출력한다. 1차원적인 공감과 위로는 가능하지만 긴 대화로 이어가면 금방 부부의 사고 회로를 또 충돌한다. 나의 복합하고 다채로운 감정선을 감당하기 벅찬 그의 사고 회로도 곧 온기를 잃고, 나 역시도 양껏 충족이 되지 못하니 풀이 잔뜩 죽어 고개를 파묻는다. 바로 그때가 그가 상처받고 있다는 걸 한참이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나만의 서운함에 취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때 그는 본인이 노력해도 잘 풀리지 못한 상황에서 자괴감과 무능력함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가 상대가 나의 맘과 같지 않았을 때 상처를 받듯, 그도 다른 포인트에서 상처를 받는다는 걸.
이렇듯 결혼 생활 3년 동안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다른 점을 마주했다. 반려인은 자존심이 쌔고 승부욕이 강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아내라서, 나의 선택과 신념들을 대부분 존중해 주고 많이 맞춰주었다.
임신 37주에 자연주의출산을 선언하며 병원을 전원 할 때도, 그는 무척 당황스러워했지만 응급상황 시 대처 매뉴얼 등을 꼼꼼히 따져가며 내가 놓친 부분들을 점검해 주었다.
내가 15년 지기 친구와 손절하던 그때 서운함과 혼란스러움에 혼자 속앓이 하며 며칠을 보내는 나를 지켜봤다. 그런 친구 때문에 소중한 아내가 감정과 시간을 낭비하며 속 썩는 게 너무 싫다던 그는 몇 번이나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어두운 내 감정의 파편들을 차분히 들어주고 내가 굳은 마음으로 끊어내고 털어낼 수 있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육아 자격증을 딸 기세로 마구 육아서적을 읽어대며 무리하던 시절 육퇴하고 자정이 넘도록 아기의 놀잇감을 만들곤 했다. 심취해서 연신 가위질을 해대던 나의 숱한 날들을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지켜봐 주었다. 그는 '그냥 하나 사주지 오늘도 야심작을 만드네'라며 하고 싶은 말을 겨우 눌러 장난스레 말을 걸다가도 내가 쏘아보면 빙그레 웃으며 내가 어지른 종이박스 조각이나 노끈 따위를 조용히 치워주었다. 그리고는 '우리 OO 이는 진짜 좋겠다. 이렇게 멋진 엄마가 있어서'라고 말하며 내가 다 만들 때까지 옆에 누워 바라보거나 가위질을 도와주었다.
세상에서 비효율적이고 손 많이 가는 번거로움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는 참 많이 다른 나의 세상을 조용히 지켜봐 준다. 좋아하고 한 번 꽂히면 앞 뒤 안 보고 달려가는 기질의 나. 뒤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며 저러다 무리하겠다, 박겠다, 넘어지겠다 생각이 들곤 한다고 한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흘려가는 일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 번도 나에게 가지 말라, 하지 말라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발견하고 이를 제거해 준다. 내가 뭐 해야 하는데라고 흘려 말한 것들도 귀신같이 기억하고 실행해 준다. 그의 사랑은 이렇듯 투박한데 웅장하다. 따뜻한 말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손 본 흔적들이 가득하다.
과거의 나가 진짜 사랑의 의미라고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던 것들이 결국은 이쁘고 소란스러운 봄날의 상춘객 같다는 걸 깨달았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기대와 내 맘과 같기를 바라는 욕심이 끝내 '서운해'라는 말로 귀결되는 숱한 날들. '좋은 내가 되어야 좋은 네가 온다는' 그 유명한 말처럼 내가 내 스스로를 솔직하게 마주하고 인정하면서부터 다 못나 보이던 그의 다른 점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달라서 힘들다, 달라서 서운하다는 관점에서 바라봤던 날 동안 스스로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행동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달라서 자주 또 그에게 반하고, 배운다. 다름이 주는 답답함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서로에게 신선한 환기가 되겠지. 어느덧 애정하는 9월의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만끽할 수 있는 때가 돌아왔다. 글을 써내려 가다 보니 반려인의 푸근하고 큰 손을 잡고 밤 산책을 하고 싶어 진다. 오늘은 서둘러 저녁을 챙겨 먹고 함께 밤 산책을 오순도순 거닐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