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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한 사랑방 Aug 09. 2023

치열하고 애달팠던 자연주의 출산 실패 썰

내 인생 가장 현명했던 실패, 지극히 개인적인 생생 후기


 주변의 걱정괴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신 37주를 코 앞에 두고 급하게 자연주의 출산을 결심하고 자연주의 출산 전문 병원으로 전원 했다. 굳은 열정과 반려인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자연주의 출산에 실패했다.


순조롭게 순산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 달리

결국 난항을 겪었다.



 39주에 접어들자마자 이슬이 비쳤고, 정확히 3일 뒤 가진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가진통은 밤사이에 얕게 왔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자 사라졌다. 곧 진진통이 오겠구나 하며 출산 가방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여보 왠지 내일 아기 나올 것 같아"

"그래? 그런데 초산은 가진통 오고

진진통오기까지도 며칠은 걸린다고 하던데...

여보 생각에 곧 인 것 같아?"

"오늘 밤부터 진진통올 것 같은데?"

무슨 확신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런 직감이 강하게 섰다.


"그래서 나 오늘 마지막 만찬을 먹어야겠어"

"그래서 뭐가 먹고 싶은데 (피식)"

"새우버거... "


반려인은 새우버거를 사 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채끝살도 한 팩 사 왔다. 그리고 바나나, 딸기주스, 초콜릿우유도 사 왔다. 내가 다닌 자연주의 출산의 병원은 출산 전 금식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식을 하면 진통부터 출산까지 녹초가 되어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 에너지를 낼 수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넘기기 좋은 과일이나 마실거리를 준비해서 오라고 안내를 주셨다.


반려인과 마지막 반찬이 될지도 모를 새우버거를 비장한 각오로 먹었더랬다. 아기가 탄생하면 걸어줄 축하 가랜드를 함께 만들었다. 그렇게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저녁 7시쯤 내 직감대로 제대로 진진통 걸렸다.


아, 이게 진진통이구나.

늘 가진통과 진진통 구분을 찾아보곤 했는데 정말 선연하게 알 수 있을 만큼 진진통은 강렬했다. 거실 소파에서 짐볼을 타고 병원에서 알려준 운동을 하며 애써 긴장을 없애보려 했다. 반려인이 차려준 저녁 식사도 쉽지 않았다. 진통이 흘러가면 한 술 떠 씹었고 진통이 찾아오면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호흡했다.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뚱한 저녁식사에서 겨우겨우 채끝살을 욱여넣었다. 낮에 고기를 사 오기를 정말 다행이라 여기며 마지막 식사로 체력을 나름 비축했다. 이때까진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였다. 곧 출산임을 알리는 몸이 보내는 시그널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동안 반련인과 수차례 연습했던 호흡으로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진통의 파도를 올라탔다 흘려보냈다. 둘라선생님이 말했던 말을 계속 되뇌었다.


"우리는 충분히 강해요.

 다 호흡으로 흘려보낼 수 있어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곧 만나자 아가야를 중얼거리며 자궁문이 잘 열릴 수 있도록 온몸을 이완하며 어디에도 힘을 주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침대에 누워 진통 주기 어플로 체크해 보니 불규칙했던 진통이 어느덧 5분 주기로 정확해졌다. 병원에서 말했던 주기적인 5분 진통 주기였다. 그리고 항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반려인에게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좀 더 자궁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감통을 위해 반려인에게 욕조에 물을 받아달라 부탁했다. 욕조에 들어오니 확실히 감통에 효과가 있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한결 살 것 같음을 느끼며 만반에 준비를 마친 배우처럼 무대에 오르는 순간을 기다렸다.



11월 27일 자정이 한참 넘어서 병원으로 향했다. 밤이 되니 확실히 추워졌다. 겨우겨우 발을 내딛으며 지하주차장까지 내려왔다. 반려인이 양수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조수석 시트에 비닐을 깔아주었다. 병원에서 미리 알려준 팁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올 때 과속방지턱에 남산 만한 배가 잔뜩 출렁거렸다. 정말 욕이 나올 만큼 아팠다. 연이어 나오는 과속방지턱이 무수하게 느껴졌다. 반려인은 재차 미안하다며 정말 미안하다며 사과하기 바빴고 나는 대답할 힘마저도 없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드디어 새벽 2시가 다 될 때쯤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문 앞에서 조산사님을 보고 주저앉았다. 아 무사히 왔다. 이제 진짜 출산만 남았다 싶은 마음과 동시에 출산을 도와줄 의료진들과 조산사님을 보니 절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하니 자궁문은 이미 6cm나 열려있었다. 초산모는 자궁문이 열리기까지 오래 걸린다고 하던데... 집에서 진통하는 내내 호흡과 이완을 잘한

효과가 톡톡히 있었구나 싶어 괜스레 어깨가 올라갔다. 이 정도 진행되기까지 정말 힘들고 아팠을 텐데

잘 참았다며 조산사님과 둘라선생님이 따뜻한 손길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말에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반려인은 내 볼과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멋졌다, 잘했다고 격려해 주었다. 마치 우등생이라도 된 것처럼 좋았다.

그리고 병원에 무사히 왔다는 안도감, 아기를 곧 만날 수 있다는 흥분감, 여기까지 정말 잘 해냈다는 자부심이 내 안에 일렁였다. 든든한 반려인의 따스한 눈을 보며 나 잘하고 있구나, 이제 순산만 남았다고

순조로운 진행에 감사해하며 그 와중에도 설레었다.

그때까진 몰랐다. 내가 출산까지 난항을 겪을 거라고는.




자궁문은 다 열렸는데 아기가 안 내려오네요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서 수중 감통도 하고, 병원복도를 수없이 걸었지만 아기는 좀처럼 내려오지 못했다. 아기의 머리가 자궁문 오른쪽에 치우쳐져서 입구로 진입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기가 중앙으로 올 수 있도록 움직여보자고 제안하셨다. 알려주신 자세를 취하고 둘라선생님이 운동을 거들어주셨다.


그때부터 기존에 느끼던 넓고 진한 진통과는 다른

아주 날카롭고 숨 쉬기 어려운 예리한 진통들이 덮쳐왔다. 임신 내내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아기가 발로 명치를 마구 찼다. 명치와 아기 발이 있는 오른쪽 갈비뼈 언저리가 부서질 듯이 아파서 호흡을 할 수 조차 없었다. 정말 억 소리가 절로 났다. 정확한 진행 상황을 알아야 할 것 같아 나의 희망으로 2차 내진을 했지만 아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아기는 오른쪽에 머물며 중앙으로 오지 못했다. 이미 자궁문은 다 열리고, 진통은 1분 주기로 내 온몸을 때려 부실 기세로 휘감았다. 사람이 이렇게 아플 수 있나, 어떻게 이런 통증이 있을 수 있나. 미쳤어, 와 진짜 미치겠네, 어떡해 따위의 말들이 떠올라서 어느새 호흡도 놓치고 있었다.


부푼 기대과 자신감은 숨 막히는 진통에 잠식당했고

점차 막막함과 공포가 치밀어 올랐다. 명치와 갈비뼈가 아파 운동은 못하겠다고 하자 둘라선생님이 부드럽게 내 배를 마사지하며 아기가 오른쪽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시간이 갈수록 진통은 날카롭게 허리와 치골을 난도질하는 듯했다. 뭔가 잘못된 고 아닌가 싶은 통증이었다. 이건 내가 그동안 호흡으로 참아오던 이전의 진통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내가 호흡하며 아기가 움직이기를

기다릴 수 있는 정도를 이미 넘어선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섰다.


그렇게 출산 연습하며 반려인에게 “내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수술해 달라고 하더라도 할 수 있다고 나를 붙들어 줘" 라며 당부했던 나인데, 결국 수술해 달라고 백기를 들고 말았다. 여태 잘해왔다며 아기도 노력하고 있는데 좀만 더 힘내보자는 병원 분들의 조언에도 내 머릿속에는 그게 뭐든 이대로 안 되겠는 직감과 외침만이 가득했다.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던 반려인의 눈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원장님께 수술 의사를 밝혔다. 간곡한 애원 끝에 오른 수술대 이미 진통 간격은 1분도 안 되는 꼴로 덮쳐왔고 분만실에서 수술실까지 가는 짧은 거리에도 정신줄이 끊어질 것처럼 아찔하게 아팠다. 그렇게 수술대에 오르면서도 아파서 울부짖으며, 한 마리 짐승처럼 기괴한 소리를 내며 네 발로 겨우 올랐다. 마취를 위해 새우등을 취하는 순간까지 정말 마지막 남은 인내과 체력을 끌어모아야 했다.


그리고 마취가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토해내듯 깊은 숨을 드디어 편하게 내쉬었고, 정말 오랜만에 정면을 보고 바로 누울 수 있었다. 15시간을 진통과 사투를 벌이며 치열하게 버티던 나의 몸이 싸늘한 수술대에 오르니 마구 떨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과 턱 그리고 입술까지 속절없이 덜덜거렸다. 수술대에 오르니 그간 치열하게 견디고 이렇게 수술하려니 어딘지 모르게 나 스스로가 애처로워 참을 수가 없었다. 서러운 눈물이 턱 밑까지 따끔하게 가득 찼다.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가 절로 튀어나왔다.

'엄마 나 좀 지켜줘... 엄마 엄마' 하고 중얼거렸다.

누가 제왕절개는 마치 배에서 사랑니 뽑는 느낌이라고, 몸이 덜컹거린다고 하더니 아- 이 느낌이구나. 그 느낌이 아프기보다는 무서웠다. 한참 동안 장기가 뽑히는 듯한 느낌에 얼어붙어 있을 무렵 얼마 뒤 응애- 소리가 수술실에 울렸다.


출산 3일 전에는 분명 3.4kg 정도라고 했는데 아기는 3.64kg으로 묵직하게 영글어 나왔다. 응애 소리와 함께 겨우 꾹꾹 참아내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흑흑 거리며 흐느껴 울었다. 내 옆에 핏덩이 같은 아기를 보는 순간 내가 느낀 황홀함, 경이로움, 감사함… 이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느꼈던 모든 경험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의 가슴 벅찬 영광들이 온몸에 퍼졌다.


이렇게 고귀하고 황홀한 경험이 또 어디 있을까 하며 수술실에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만 연발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39주 4일이라는 10개월의 대장정이 이렇게 무사히 막을 내리는구나. 아기의 탄생까지 무탈하게, 안전하게 길고 긴 에피소드가 끝났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황홀한 경험을 누리다니 아기를 보는 순간 그 모든 아픔들이 씻겨 내려갔다. 모든 의식이 선명하게 깨어나다 못해 맑고 상쾌해지는 오묘한 기분이 감돌았다.


우리 부부의 요청대로 반려인은 수술실에 함께 들어갔고, 반려인이 아기의 탯줄을 끊었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내 위치에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반려인은 수술실 코너에서 함께 탄생의 순간을 인내하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내 곁으로 다가와 멋졌다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반려인의 얼굴은 눈물로 덤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난 더 크게 울었다. 우리 둘은 얼굴을 맞대고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다리에 탯줄이 두 바퀴 감겨있던 아기


수술 후처지가 끝나자 집도해 주신 원장님께서 수술 결정하길 잘했다며 다독여주었다.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기 발에 탯줄이 두 바퀴가 제법 타이트하게 감겨 있었다고... 그래서 아래로 내려오지 못했던 거라고.


이를 전해 듣는 순간 아찔했다. 다행히 지금은 전혀 문제없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아기가 어쩌면 내려올 수 없던 상황에서 발로 내 명치를 차며 신호를 보냈던 건 아닐까 싶어 깊은 안도감에 몸에 힘이 쫙- 풀렸다. 나와 아기가 열 달 동안 한 몸으로 있으면서 어쩌면 정말 많은 교감을 나누고 있던 건 아닐까.

정말 감사합니다...

절로 터져 나오는 말을 막을 길이 없었다.


양가 가족들의 걱정과 우려 속에도 의기양양하게 오롯이 내 의지로 밀어붙였던 자연주의 출산은 비록 실패했지만, 길고 긴 15시간의 진통을 무통 없이 오롯이 호흡으로 견디내며 사랑하는 아기천사를 기다렸던 내 생애 가장 길었던 하루.


반려인 품에 안겨 깊은 호흡을 내쉬길 반복하며, 내 등을 연신 쓸어주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인내하던 시간. 이 세상에 우리 가족만 있는 것 같았던 지금 이 순간만을 현존하던 우리 가족의 잊지 못할 추억.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있다는... 2019년 이후 집계도 안 하고 있다는 본원에서의 제왕절개 수술률. 내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원장님과 병원 분들의 위로와 배려가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산의 방식만 달랐을 뿐, 내가 지켜주고 존중해주고 싶었던 아기에 대한 배려는 자연주의 출산 병원의 모토에 맞게 모두 이뤄졌다.


나 대신 출산 직후부터 남편이 아기를 캥거루 케어하며 진정시켜 주었다. 아기의 태반을 건네받아 물감으로 페인팅도 하며, 아기의 출산을 기념하고 추억거리도 만들었다. 출산 직후 가장 왕성한 아기의 빨기 욕구를 회복실로 오자마자 젖을 물며 해소해 주었다. 또한 밝은 불빛에 익숙하지 않은 아기를 배려해 어두운 조명의 평온한 병실에서 아기는 고된 탄생 1일 차를 만끽하며 편히 쉼을 취했다. 사랑한다, 고맙다, 어쩜 이렇게 예쁘냐 등 온갖 세상에 예쁘고 좋은 말들을 꺼내어 24시간 곁에 머물며 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결국 고생은 있는 대로 다 하고 수술했다며 억울하겠다고들 말한다. 심지어 자연주의 출산 병원은 일반 산부인과와 달리 병원비 자체가 비싸기에 그런 말을 더더욱 할 수 있다. 하지만 출산의 공포나 두려움으로 기억되는 출산의 대서사시가 아닌 황홀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심지어 반려인마저도 그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공유하는 것. 아직까지 내 주변에 출산경험이 있는 이들 중에 출산의 기억이 좋았다, 황홀했다고 말한 사람은 내 주변에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서툴고 모르는 거 투성인 초보 엄마 아빠가 5박 6일이라는 입원기간 동안 모자 동실하며 전우애로 똘똘 뭉쳐 아기를 위해 뭐든 최선을 주고자 노력했던 세상 열렬했던 시간들. 내 인생 가장 멋진 실패였고, 잘 선택한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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