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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Mar 25. 2020

17. 밑 빠진 몸에 약침 붓기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11월 17일에 마지막으로 글을 발행했고, 지금은 3월 25일. 플랫폼 자체가 낯설 정도로 간만이다. 다시는 쓰지 못 할 줄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만 쓰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이제부터 구구절절문을 쓰겠습니다.


 처음 매거진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희망이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아무리 만성통증이라도 언젠간 나아지겠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 되겠지. 부정적인 소리만 늘어놓으면서도 속내는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상태가 나빠졌다. 3월이니까, 처음 증상을 느낀 시점으로부터 1년 3개월이 됐다. 나의 병든 몸은 요맨큼도 나아지지 않았다. 통증 자체는 덜 한데, 극도로 활동을 줄이고 요양 중이라서 그렇다. 어지간하면 외출하지 않는다. 두세 시간도 통증 없이 서있을 수 없으므로.


 또, 에세이를 쓰며 많은 섬유근육통 환우를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까놓고 말하겠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나보다 덜 아픈 환우를 보면 부러웠고 나보다 더 아픈 환우를 보면 두려웠다. 비겁하고 지저분한 마음이 자꾸 생겼다. 계속 죄책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아팠던 얘기를 쓰고 있자면, 벌어진 상처를 스스로 후벼 파는 듯했다. 그때 상처가 어떤 방향으로 찢어졌더라? 얼마나 깊게 다쳤더라? 끝도 없이 곱씹는 기분.


 그래서 당장이라도 한의원 얘기를 갖고 돌아올 것처럼 매거진을 쓰다가 튀었다. 그랬다. 내키면 다시 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써놓은 글은 남겠지.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읽겠지. 그걸 위해 기록한다.





 엄마가 찾아온 (용하다는) 한방병원의 한의사는 믿음직했다. 어떤 방면에서 믿음직했느냐면, 나의 만성통증을 의심하지 않았다. 숱한 양의들이 그랬던 것처럼, 엑스레이 훑어보고 죄송하지만 꾀병 아니세요? 그러지 않았단 소리다. 몹시 친절하고 전문적인 진료였다. 해당 한방병원의 한의사는 아주 조리있게 내가 아픈 이유를 설명했는데, 안타깝게도 도저히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진짜로. 뭐였더라? 기억나면 나중에 덧붙이겠다. 사실 쉬는 동안 많은 걸 까먹었다. 아픈 기억을 하나하나 헤집고 기억하는 것도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되더라고. 그래서 나의 똑똑한 뇌가 저절로 아팠던 기억을 지워버렸다. 많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개인적인 경험이야 가물가물한 채로 적당히 적어도 되지만, 한의사의 소견을 적당히 적으면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기억이 확실한 부분만 적겠다.


 한의사는 약침을 권했다. 약침이… 뭐라더라… 나를 낫게 해줄 거라고 했다. 나야 뭐, 낫는다면 뭔들 못 하겠습니까? 라는 마음으로 베드에 누웠다. 의사선생님은 정말로 친절했다.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여기저기에서 침을 많이 맞아보았지만, 침을 놓는 매순간 ‘안전한 침입니다. 괜찮습니다. 아프시면 말씀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전합니다.’라고 안심시키는 의사는 처음이었다. 그 모든 침을 놓을 때마다… 세상에… 이쯤 되면 서비스직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나의 체중이었다. 당시 bmi 지수로 15 중반대였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굳이 숨을 들이쉬지 않아도 갈비뼈가 보였다. 지금은 더 말랐는데 하여튼. 양약도 몸이 약한 사람에게 투여하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처럼, 약침도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몸이 너무 마르고 약해서 침을 많이 놓을 수가 없다고 그러더라고.


 처음 약침을 엎드려서 맞는데 누워 있는 상태로도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맞고 나면 몹시 노곤해서 당일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이 약해서 약한 몸을 치료할 수 없는… 개환장스러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침을 적게, 자주 맞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착한 만성통증 환자였으므로 되도록 의사의 말을 따랐다.





 한의원에 다니면서 콜센터를 주 2회 근무로 줄였다. 주 3회 근무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콜센터와 한의원을 부지런히 오갔다. 아픈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 아픈 것도 억울한데 드러누워 있으면 계속 아파진다. 좆같다. 1달 정도 침을 맞자 효과를 봤다. 처음 한의원을 찾은 원인인 두통이 잡혔다. 그러나 허리와 골반과 하반신 통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통이 잡힌 건 기뻤지만… 지하 14층에서 13층으로 올라왔다고 해서 하늘이 보이는 건 아니니까… 별 감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밑 빠진 몸에 약침을 부었다. 마르고 약하고 종일 통증을 느끼는 몸에 꼬박꼬박 약침을 꽂았다. 집에 오는 길에는 몸이 무너질 것처럼 무거웠다. 그 짓거리를 2달 정도 했는데, 통증은 나아지는 듯 하다가도 나빠지면서 제자리걸음했다. 하반신에 한정하여 인상적인 효과는 없었다. 슬퍼라! 믿었던 한방까지 효과를 보지 못 해 나는 좌절했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날, 우연히 섬유근육통이라는 병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뻤다. 아직 찾아가 볼 병원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결심했다. 가자! 류마티스내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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