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뒤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제목으로 어그로(관심)를 끄는 것. 본래 글 쓸 때 제목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었다. 1화 제목이 처음 쓰던 시점에선 <어느 여름>이었다. 근데 여기 눈치를 보니까, 저런 제목을 걸면 아무도 안 읽을 것 같더라고. 얼른 자기소개를 덧붙였다. 그래서 나온 제목이 <어느 여름, 섬유근육통 환자가>였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긴데. 브런치에 의료계 종사자가 많다는 것을 이미 안다. 그분들이 어찌나 열심이시던지, 나는 도저히 나와 같은 질환자의 글을 찾을 수 없었다. 단적인 예로, 섬유근육통을 검색하면 온갖 정형외과와 마취통증의학과와 한방병원에서 올린 게시글이 잡힌다. 나도 혹시 섬유근육통일까? 섬유근육통 자가진단! 섬유근육통의 치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하하, 조까쇼.
장사치들 때문에 검색 품질 떨어지는 건 초록창으로 충분하지 않나? 근육통, 두통, 만성 통증에 대한 정보가 병원 영업으로 귀결하는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그걸 정보라고 생각하고 올린 게 맞긴 한가? 저기요, 검색하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문장이 나와용.
하여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단순히 관심을 끌자고 붙인 제목은 아니다. 나는 정말 의사를 믿지 않는다. 어지간한 만성 통증 환자들은 제목에 공감하리라 믿는다. 특히, 장담컨대 섬유근육통 환자 8할은 의사를 불신할 것이다. 왜냐고? 몸은 멀쩡한데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보며, 정신머리 없는 의사가 한 번쯤은 반드시 꾀병 취급했을 테니까. 나는 한 번이 아니었다.
6월 말 생긴 두통으로, 2차 병원 정형외과에 내원했다. 수순처럼 엑스레이를 찍었다. 정형외과 전문의는 희고 빳빳한 경추 사진을 보더니 말했다. 일자목이 있긴 한데 심하진 않고요. 이 정도 일자목은 현대인이면 무조건 있어요. 통증이 심하게 생길 정도는 아닌데요. MRI는 찍어볼 것도 없습니다. 몇 시간을 기다려 받은 게 그거였다. 뭘 이런 걸로 병원에 왔습니까, 라는 소견. 아프다니까 일단은 드릴게요, 하고 주는 진통제.
기시감이 들었다. 지난겨울 나의 8도 틀어진 척추를 보며, 자기도 이 정도 측만증은 있으니 운동하라던 의사. ‘환자분이라고도 하기 힘들어요’라고 웃었지. (*2화 참고*) 지금 보니 정형외과 ‘교수님’이라고 적어놨네. 이 때는 무슨 놈의 예의를 그렇게 차리고자 했을까? 의사는 의사다. 제자들이나 교수님이라 부르라고 해.
까놓고,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병원이 좋아서 왔겠나? 병력을 설명하면서 막, 삶의 보람을 느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이제 병원의 공기마저 지겹다. 그래도 아프니까 가는 거지. 즐거워서 아픈 몸 이끌고 거기까지 갔을까? 아니면 내가 30살쯤 졸업하려고 대규모의 꾀병을 부리는 걸까? 그런 사람을 겪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의 없는 진료에 상처 입는 환자는 나이롱환자보다 몇 배 많다. 진료실까지 환자가 들어왔으면 좀 믿어라. 사람이 아프다는데. 어휴, 씨발.
혹시 내가 너무 꼬여있어서 꼴사나운가요?
그렇다면 의사와 환자는 대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해보길 바란다. 내가 백날 의사를 싫어해봤자, 의사는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는다. 나는 당장 아프고, 통증을 덜어내 줄 전문의약품이 필요하고, 그걸 처방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의사뿐이다. 의사를 믿지 않으면 나만 손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도 누구보다 부지런히 병원에 다닌다. 때로는 모욕감을 느끼고, 때로는 수치심을 느끼며.
내게 모욕감을 주었던 의사는… 정형외과 이후 내원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였다. 집에서 가까운 개인병원이었다. 좀 좋은 병원에 가고도 싶었지만. 장거리 이동이 불가해서 찾아갈 여력이 없었다.
그 의사는 일단 틱틱 반말을 했다. 동네 할아버지처럼 친근한 말씨도 아니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 뭐, 뒤통수?’ 이런 식.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본인이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인가? 싹바가지 없는 컨셉을 만들어서 시청률 올려야 하나?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을 하니? 내가 어려서? 97년생에겐 반말을 해야 한다면, 몇 년생부턴 존댓말을 해주나? 90년생은 좀 모자라나? 한 87년생? 77년생?
사실 반말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그런 의사가 너무 많거든. 여하튼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게 했다. 나는 엑스레이를 찍었다. 경추엔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돌아왔다. 당연 그렇겠죠. 신경 문제인 것 같은데, 주사 한 방 맞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놀랍게도 나는 몹시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그는 내 뒤통수에 무시무시한 주사를 꽂을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에게 할 말 못 할 말 다 할 수 있는 인재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의사에게 물었다. 주사 말고 다른 치료법은 없을까요?
그러자 의사가 소리쳤다.
주사를 안 맞을 거면 마통과를 왜 와!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된통 혼난 나는 덩달아 소리쳤다.
근처에 다른 병원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물리치료만 받고 나왔다. 좆도 효과가 없었다. 주사를 맞았으면 효과를 봤을까? 모른다. 그런 의사에게 나의 소중한 뒤통수(왠종일 욱신거림)를 맡길 수는 없었다. 정형외과에서 받은 근이완제와 듀오셋정이 있었지만, 진통 효과를 보지 못했다. 두통은 물론 만성적인 허리 통증도 전혀 못 잡았다.
양방에서 수모를 당한 나는, 많은 만성 질환자들이 그렇듯 한방으로 눈을 돌린다. 마침 엄마가 용하다는 의원을 알아왔다. 그렇게 한방병원을 처음 찾은 게, 7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