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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Nov 16. 2019

15. 두통의 시작





    콜센터 일은 빠르게 익숙해졌다. 주문 전화를 받는 단순 인바운드 업무였다. 정신과 의사는 아르바이트에서 느낄 스트레스를 걱정했지만,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보람을 느꼈다. 누군가의 저녁 식사를 책임지는 업무라니,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나는 신나서 전화를 받았다. 콜 실적이 좋았다. 실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불만이 아주 없진 않았다. 의자가 불편했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오래된 의자와 새로 산 의자가 뒤섞여 있었는데, 새 의자 비율이 10자리 당 한두 자리 꼴이었다. 나는 일찍 출근해서 삐걱거리지 않는 의자를 쟁취했다. 멋모르고 오래된 의자에 앉았다가, 등받이가 헐떡거리며 넘어가서 4시간 만에 허리가 나간 적이 있다. 다음 날 앓아누웠다. 끔찍한 의자였다. 허리 튼튼이들은 몰라도 나는 거기 앉으면 안 됐다.


    몇 번 출근 만에 요령이 생겼다. 새 의자를 골라 앉아, 주 3회 하루 4시간 콜을 받았다. 정신과에선 밀나시프란, 즉 익셀 캡슐이 추가되었다. 마찬가지로 통증을 잡는 약물이라 했다. 뭐든 좋으니 덜 아프게만 해주세요. 그러나 여전히 아르바이트와 병원 이외 일정은 몸에 무리가 갔다. 조금만 무리해도 돌발통이 왔는데, 얼마나 무리하면 통증이 오는지 감이 안 잡혀서 통증 관리가 힘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상이 생겼다. 뒷목과 뒤통수가 이어지는 부근에 뻐근하게 오는 두통이었다. 일명 뒤통수 통증. 긴장성 두통인지 후두신경통인지 편두통인지, 모른다.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지 아직도 모른다.


    원인을 추측했다. 물론 콜센터 때문이겠지만. 나는 원래 목소리가 낮은 편이다. 콜을 받을 때, 상냥한 음성을 내려면 목소리를 짜내야 했다. 당연히 목과 어깨가 긴장했다. 4시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승모근과 뒷목이 딱딱하게 뭉쳤다. 마사지볼이 돌아가는 안마기에 그걸 푸는 게 일과였다. 그래도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칭을 하면 나아져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6월 말, 그게 심한 두통으로 발전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통증을 정확히 묘사하는 건 늘 어렵지만… 이거야말로 남에게 전달하기 힘들다. 금방이라도 뒷목을 잡고 넘어갈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뒤통수와 목이 분리될랑 말랑한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 망치로 은근하게 뒤통수를 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무겁고 지끈거리는 통증이 껌딱지처럼 머리통에 들러붙어 종일 갔다.


    목을 가누는 방법을 모르는 신생아 마냥,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당장 일은 해야 하니 턱을 손으로 받친 채 전화를 받았다. 머리 무게를 덜면 통증이 좀 덜 했다.





    12월부터, 어언 아픈 지 반년. 아픔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증상이 생기면 처음처럼 낯설고 무서웠다.


    허리는 누우면 통증이 가라앉는다. 사라지진 않아도 심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 두통은 서 있을 때도 앉아있을 때도 누워있을 때도… 강도를 달리할 뿐 끊임없었다. 종일 계속되는 소지옥이었다. 그 무렵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무서워하게 됐다.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수면인데도 불구하고, 다가올 아침이 겁이 나서 잠을 설쳤다.


    당연한 소리지만, 자는 동안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특히 나처럼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때려 넣고 잠드는 사람은 더욱. 그러나 약 기운이 가시고 아침이 오면 통증도 돌아온다. 무통의 단 꿈에 젖어있다가, 정신이 들면 서서히 고통을 느낀다. 내가 아픈 사람이란 사실을 자각한다.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뻣뻣해진 목, 망치로 얻어맞은 듯 얼얼한 뒤통수, 어떤 자세를 취해도 불편한 허리… 한 순간에 현실을 맞닥뜨리는 거다. 통증엔 휴학도 퇴사도 없다. 도망칠 수 없었다.


    섬유근육통 환자는 대개 아침에 가장 심한 통증을 느낀단다. 역시 이유는 모른다. 자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근긴장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짐작만 하고 있다. 어쨌든 나도 그런 케이스였다. 하루 중 아침에 제일 통증이 심했다. 그래서 눈 감으면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수도 없이 나올 문장이니 놀라지 말길.





    죽을 용기는 없었다. 아프기 싫어서 죽으려는 건데 죽기 위해선 아파야 하니까. 그저 잠든 다음 영영 깨어나지 않길 바랐다. 무통의 단 꿈에 젖은 채, 다시는 눈을 뜨지 않는 거다.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천국도 지옥도 극락도 황천도 믿지 않는다. 중천도 구천도 내세도 믿지 않는다. 죽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죽는 시점에서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 남들은 바라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적어도 나만은, 제발.


    죽고 나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지. 지긋지긋한 근육통도 신경통도 우울도 불안도 없겠지. 그걸 느낄 피부도 근육도 신경도 물컹한 뇌까지도 전부 불타서 사라질 테니까.


    러한 자살 사고思考가 끝도 없었다. 섬유근육통은 우울증을 악화시켰다. 이러니 정신과 약물을 끊을 수가 있나? 두통이라도 잡고자 나는 병원에 찾아갔다. 어디가 먼저였더라. 정형외과 예약을 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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