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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Nov 14. 2019

13. 괜찮아, 고마워, 얼른 나아야지

만성 질환자의 흔한 거짓말





    친구가 감기에 걸렸다고 가정해보자. 가엾은 친구는 코가 맹맹하고, 이따금 콜록거린다.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넬까? “괜찮아?” 당연히 물어보겠지. 친구는 대답한다. 괜찮아, 고마워. 당신은 친절하게도 얼른 나으라고 응원의 말을 덧붙일지 모른다. 그러면 친구는 대답할 것이다. 응, 얼른 나아야지.


    나는 주변인에게 늘 ‘아픈 사람’이다. 다들 내가 어느 정도 아프다는 사실을 안다. 최근 근황을 묻는 질문에 전부 ‘허리가 안 좋아서 휴학했어’라고 답했으므로, 어디가 얼마나 아픈진 몰라도 내가 환자임은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묻는다.


    괜찮아?


    이 질문이, 세상에서 제일 답하기 어렵다. 안 괜찮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의 선의는 알지만. 몸은 괜찮아? 얼른 나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전혀 괜찮지 않아. 여러 과를 전전하다가 류마티스내과에서 드디어 진단을 받았는데, 글쎄 섬유근육통이래. 섬유근육통이 뭔지 알고 있니? 신경계인지 뭔지가 고장나서,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통증을 느낀다는 거야. 척추가 멀쩡한데도 앉아서 밥 한 끼도 못 먹을 정도로 아픈 거지.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정확히 알 수 없고 완치가 가능한지조차 의견이 분분하단다. 통증에 유효한 약을 부작용으로 속이 뒤집어지기 직전까지 쓰고 있는데 일상생활이 안 돼. 허리에 좋은 운동은 하고 있냐고? (깊은 한숨)


    이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안 괜찮다는 소리 들으려고 물은 것 아니잖아요. 아픈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건 가벼운 스몰토크에 속하잖아요. 혈연 혹은 아주 친밀한 관계가 아닌 이상, 그 사람이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상세하게 알고 싶진 않잖아요. TMI잖아요.


    그래서 나는 답한다.


    괜찮아. 고마워. 얼른 나아야지.


    이게 내가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이다.





    종종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잘 모른다. 감기 환자라면 그래도 괜찮다. 야! 괜찮냐? 얼른 나아라! 뭐 아무렇게나 말해도, 감기는 낫는다. 하지만 만성 질환자는 낫지 않는다. 만성 질환자는 질환과 함께 살아다. 계속 계속 계속.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질환과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언제든지 나를 괴롭힐 마음이 만만한 적敵과 공존한다는 소리다. 특히 나와 같은 만성 통증 환자는… 단언컨대 이미 통증을 느끼는 것만으로 엄청난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을 다. 그렇기 때문에 무신경한 안부나 조언에 부드럽게 대응할 여유가 없을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이제 여유가 없다.


    따라서 만성 질환자를 대할 때는 사고방식을 약간 바꾸는 편이 좋다. 만성 질환자는 ‘아픈 사람’인 동시에 ‘아플’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면 된다. 괜찮아? 이 정도는 뭐, 좋다. 하지만 얼른 나으라는 응원의 말은… 미안하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성 통증은, 잘 낫지 않는다.


    섬유근육통 완치를 위해 노력하는 환우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낫지 않는다고 말하기 무척 조심스럽다. 나 또한 부작용을 감수하고 새로운 약물을 시도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시도’다.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감기약을 복용하는 것하곤 근본부터 다르다. 나도 당연히 나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질환이 만성적이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선, 천지가 뒤집히는 것처럼 변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다.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희망만으로, 내가 복학을 하면? 아르바이트를 구하면?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한 차례 감당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이전 화 참고*)





    그럼 어쩌라고? 뭘 어떻게 대하라고? 솔직하게, 나도 잘 모르겠. 만성 질환자 100명이 있으면 100명이 전부 다른 사람일 텐데, 함부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수는 없지. 다만 직접 느낀 바를 얘기하자면, 사람들은 나를 너무 무겁게 대하거나 너무 가볍게 대했다.


    무겁게 대하는 쪽은, 환자인 나를 두고 어쩔 줄 모른다. 질환자인 나와 비질환자인 자신 사이에 높은 벽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벽 너머에 있는 내가 안타까워서 펄쩍거린다. 아픈 내 손을 꼭 쥐고 기도하거나 (특정 종교를 비하하려는 마음은 없으나 나는 무교니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눈물을 짓는다. 그러면 나는 진짜… 뭘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 누구 못잖게 자기 연민이 심한 나라도, 나보다 심하게 날 동정하는 사람을 만나면, 돌연 기운이 생기고 그를 저지하고 싶어진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같지 않지만, 같은 사람이다. 꼭 동정하고 싶다면 말했다시피 병원비를 보태주길 바란다. 우리은행 1002…


    가볍게 대하는 쪽은, 만성 질환을 극복하라고 한다. 이게 진짜 골 때린다. 실질적으로 이 글을 쓰게 마음먹은 군상이다. 내 통증은 만성적이라는 것을 설명해도 그저 얼른 나으라고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내가 이미 시도해본 모든 방법을 조언이랍시고 내놓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응원하는 비질환자들.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새삼 절망해야 했다. 극복이란 단어를, 왜 그렇게들 좋아하실까? 저기요!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극복의 증거라고요!


    또 글 쓰다가 흥분했다.

    봐라, 내가 이렇게 여유가 없다.





    그래서 더는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걱정해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나는 괜찮지 않다. 나으리라고 확답도 못 한다. 요통이 어쩜 이리 오래 가느냐는 추궁에 얼버무리기도 지쳤고, 존재하는 고통을 순화시켜 말하기도 지쳤고, 돌려 말하기도 지쳤다. 그렇다고 해서, 아끼는 상대에게 지난한 질병기를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내가 만성 질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더는 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좋다. 그럼 오래간만에 얼굴 봤는데, 어떻게 인사를 하느냐고?


    뭐 먹을래? 하고 물어보면 된다. 나는 곱창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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