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난 Nov 14. 2019

12. 그래도 일은 편하지 않아요?

일주일 만에 알바를 때려치우며





    지독한 요통과 근육통을 매단 채 나는 두 번째 출근을 한다. 바로 실무에 투입되었다. 솔직히 일이 아주 빡세진 않았다. 홀서빙이 난생처음이라는 어리바리에게 얼마나 대단한 업무를 맡겼겠나.


    나는 고참이 주문받을 때 따라다니며 메뉴를 메모했다. 주문한 요리가 나오면 들고 날랐다.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얼른 접시를 치우고 잔반을 버렸다. 고스란히 남은 음식을 짬통에 쏟고 돌아오면, 이미 다른 서버가 테이블을 닦고 세팅 중이었다. 서로가 일을 마다치 않고 돕는 분위기였다. 이상적이었다. 나도 일을 마다치 않고 도와야 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모두가 한 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으니까. 주방보조와 홀서빙이 뒤섞여 맨손으로 기름 낀 그릇을 닦았다. 거대한 식기세척기를 팽팽 돌렸다.


    그러지 않으면? 정시에 퇴근할 수 없었다.


    용자 측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고용하고 배치했는지, 일개 프롤레타리아인 나는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경영·경제처럼 골치 아픈 얘기에 깜깜한 나라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더 필요하다!





    비슷한 경험을 다른 서비스직에서 한 적이 있다. 회사 측 사정으로, 원래 두 사람이 하도록 설계된 업무가 오롯이 한 사람에게 맡겨지는 바람에 뭣도 모르고 갈려나갔다. 당시 근로기준법 상 휴게시간은 1시간이었으나, 실제 2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일했다. 바쁜 날은 10시간 근무 동안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엉덩이를 못 붙였다.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생리대를 갈지 못해 샐까 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나는 좋다고 일했다. 미련했고, 또 그러고도 버틸 만큼 나름 튼튼했다.


    이야기가 샜다. 여하튼 그때 깨달은 사실은…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은, 모두가 합심해도 절대 업무를 제대로 완수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단 거였다. 그때, 모최선을 다해 마감했지만 늘 어딘가 부족한 구석이 남다. 홀서빙 이틀 째도 비슷했다. 분명 모두가 죽어라 근로하는데, 퇴근을 정시에 하네 마네 하고 있었다.





    그제야 첫 출근날 사장님이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너 갑자기 잠수 타면 안 된다. 그만 둘 거면 연락이라도 해라. 나는 완전, 토털리 농담으로 여기고 웃었었다. 하하.


    이틀 째, 무아지경으로 접시를 나르며 나는 생각했다. 그게 복선이었군요. 사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나 또한 계획이 있다. 노동 환경이 열악했음을 장구하게 떠들어서, 면접 당시 말씀드렸던 근무기간보다 일찍 사직서를 낸 잘못을 쫌 합리화하려고 한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스스로가 괘씸하다. 나름대로 나는, 사장님께 여러 번 사과드렸고, (대체근무자를 구할 정도의 여유는 없어도) 스케줄표가 나오기 이전에 사직 의사를 밝혔고, 매장에서 사직서를 작성하고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다 변명이다. 변명인데, 정말 나는 버티려고 애썼다. 진통제를 일일 최대 용량까지 까서 먹었다. 근무 중이라 별 수 없이 빈속에 집어넣기도 했다. 그래도 통증은 진드기처럼 근육과 신경에 남았다. 서 있을 때, 걸을 때, 물건을 나를 때, 문을 밀 때, 항상 아팠다. 근무하는 5시간 내내 통증을 느꼈다. 정확히는 휴게시간 빼고 4.5시간. 근데 휴게시간을 근무 중간에 넣지 않고 대개 출근하자마자 넣더라. 피크 타임엔 사람이 필요하고, 교대하는 시간대엔 손님이 없으니까. 휴식 없이 4시간을 연장 일했다.


    하나 둘 테이블이 빠지고 서버들이 설거지에 달려드는 시점. 나는 이미 허리를 숙이는 것만으로 헉 소리가 날 만큼 요통이 심해진 상태였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4번 5번 척추라 부르는 그 언저리가 아플 땐, 악 소리가 안 나고 헉 소리가 나더라. 소리를 내는 데 뱃심과 허릿심이 필요해서 그런가? 들이키던 숨조차 헉 하고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승모근이 뻣뻣하게 굳고 다리가 고, 손목 시큰거렸다. 설거지장은 말소리와 물소리로 분주했다. 고참들은, 무너져가는 나와 달리 씩씩하게 잔반을 처리다. 설거지와 식기세척기 작동, 식기 정리는 실상 단순 노동이었다. 그래서인지 입들 담으바빴다. 세척을 마친 접시를 크기대로 분류하며, 나는 남들의 전여친과 전남친 욕을 라디오처럼 청취했다. 그때 누군가 스몰토크를 걸어왔다.





    또래의 학생이었다. 여기선 오래 일했단다. 척 봐도 그래 보였다. 손이 빠르고 살가웠다. 피크 타임에 나를 여러 번 도와주었다. 그는 사교성 없는 내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일은 할 만하세요? 나는 처음이라 복잡하다고 답했다. 아직 정신없으시죠? 나는 그렇다며 웃었다. 분명 정신없긴 했다, 졸라게 아파서. 벽시계의 1분이 꼭 10분처럼 흘렀지. 그는 그런 내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도 일은 편하지 않아요?


    그는 자신의 알바 경험을 늘어놓았다. 그가 일했던 다른 직종은 이것보다 빡센 노동을 시켰던 모양이다. 그리고 여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아까 말한, 이상적인 환경!) 힘들지 않댔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오래 일할 수 없겠구나. 이 사람들은 나와 다르구나.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고질적인 요통을 차치하더라도, 5시간 노동의 피로도를 버틸 수 없었다. 나는 퇴근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때까지 기력을 소진해야 했다. 귀가하자마자, 먹지도 마시지도 못 하고 1시간 즈음 쓰러져 있어야 씻을 기운이 생겼다. 몸이 피로하다고 해서 푹 잠들지도 못 했다. 이미 신경쇠약과 통증으로 인해 불면증이 심했으므로. 고작 5시간을 일하기 위해, 앞뒤 24시간을 꼼짝없이 앓아누웠다.





    주 15시간 노동을 위해 일주일사용해야 했던 거다. 일주일이 7일이 아닌 10일이었다면, 열흘을 꼬박 누워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남들처럼 노동할 수 없었다. 래는 편하다고 말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나머지 시간을 전부 휴식에 쏟아도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못 견디게 아프고, 끔찍하게 피로했다.


    하루 만에 메뉴판을 외워오라면 외울 수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주류 메뉴를 전부 외워오래도 외워갔을 거다. 손님 응대는 좀 버벅거렸지만, 연습하면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몸으로 하는 일은 그게 안 됐다. 한계가 명확했다. 일을 하면 몸이 아팠다. 오래 일을 하면, 더 많이 아팠다. 열심히 일하면, 더욱더 아팠다. 극복할 수 없었다. 진통제를 먹으며 몰아붙였지만, 15시간을 일하고 나서야 받아들였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남들은 할 수 있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도돌이표였다. 대학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나의 무능을 맞닥뜨렸다. 분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 환자라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지금도 각종 신경병증성 통증 약물과 진통제를 복용한 뒤, 감사하게도 병증이 사라지면 내가 섬유근육통 환자란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걸 잊으면 무리하게 된다. 무리한 활동은 반드시 후유증으로 돌아온다. 그런데도 나는 망각하길 반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잊고 싶어서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환자여, 네 주제를 알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