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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Nov 13. 2019

11. 환자여, 네 주제를 알라





    섬유근육통을 얻은 이후, 습관처럼 되뇌는 문장이다. 네 주제를 알라. 네가 섬유근육통 환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 증상이 없다고 해서 자만하지 말라. 언제든지 통증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 질환 앞에서 교만하지 말라. 철학적으로 읽힐 수도 있고 종교적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물론 나는 철학에도 종교에도 관심이 없다. 오직 나의 고통에만 관심이 있지.


    섬유근육통이라는 난해한 질환을 겪으며, 나는 내가… 좆같게도 주제를 알고 몹시 자중하며 살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소리냐면, 이런 거다. 나는 오늘 컴퓨터 게임이 하고 싶다. 앉아서 한 3판 했는데, 벌써 허리가 아프다. 그런데 게임이 너무 재미있다. 요통을 참고 경쟁전을 몇 판 더 돌린다. 그러면 다음 날, 단 10분도 의자에 앉지 못하게 된다.


    죄목은 주제를 모르고 오래 앉아 있었다는 것. 형벌처럼 격렬한 요통을 겪으며 참회해야 한다.





    5월까지는 이러한 상황 파악이 잘 안 됐다. 질환의 존재조차 몰랐으니 통증 관리에 관해서도 무지했다. 하루 무리해봤자 하루 이틀 쉬면 나을 줄 알았다. 전편에 말했다시피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더니 통증이 약간 잠잠해졌고, 몸을 쓸 용기가 생겼다.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경제활동을 하면, 우울감이 나아지고 자기 효능감이 생길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꼼짝 않고 누워만 있는 나를 좀 고깝게 보셔서, 그 눈초리를 피해 사람 구실을 하고 싶었다.


    이게 컸다. 환자가 아닌 사람 구실이 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침대에 눅눅하게 누워 있면, 방문 너머로 이따금 할머니 중얼거렸다. 허구한 날 저러고 누워만 있으니 어떡하면 좋으냐… 그럴 땐, 차라리 직접 욕을 했으면 싶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와 소리 쳤으면, 아프다고 해명이나마 할 텐데. 그럴 기회는 없었다. 나는 ‘허구한 날 저러고 누워만 있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아주 한심스럽다고 했다. 요양이랍시고 쉬고 있는 모습이, 할머니에겐 너무도 게을러보였던 거다. 그는 내 불가해한 만성 통증과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을 받아들이기엔 연로했다.


    늘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할머니의 무지로 상처 입었다. 말씀하시는 패턴은 주로 다음과 같다. 네가 나을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데, 정신과 약 같은 데 의존을 하니까 이렇게…(후략). 그런 얘길 들을 적마다 나는 간신히 (착하게) 대답한 뒤, 방문을 닫고 혼자 찔찔거렸다.





    이렇게만 적으니 할머니가 악역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할머니가 연로하고 무지한 것이 그의 탓은 아니므로. 어찌 되었든 나는 할머니를 좋아한다. 일평생 나는 할머니와 살았으며, 그는 새빨간 신생아였던 손녀가 종마種馬만 하게 자랄 때까지 정성으로 나를 키웠다. 나도 이제 할머니 속을 그만 썩일 때가 됐다. 하나뿐인 녀가 한심스러워서야 쓰나?


    따라서 나는 면접을 보러 다녔다. 곧 홀서빙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 주 3일, 5시간짜리 파트타임이었다. 30분 휴식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4.5시간 일하고 귀가하는 거였다. 아주 무리한 강도의 노동은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멍청하게도.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는 몇 차례 경험이 있었지만, 홀서빙은 처음이었다. 내가 예상한 최대 난관은… 접시를 깨 먹는 거였다. 나는 종이짝 같은 완력을 가졌으니까. 무시무시하게 무거운 요리를 옮기다가 접시를 깨는 일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는 최악을 만난다. 바로 설거지장에서.


    나는 홀서빙에게 서빙과 세팅만 시킬 줄 알았다. 그렇게 공고가 났으니까! 심지어 그 식당은 주방보조(시급이 더 높았다)를 같이 구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설마 최저시급 받는 홀서빙 알바에게까지 설거지를 시키겠어? 생각했다. 존나 순진하게도. 어리바리하게 일을 배우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설거지를 하러 와 있었다. 20개가량 테이블에서 다 쓴 식기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닦아도 닦아도 닦아도 닦아도 컵이 생겼다. 진짜 대박. 사람들 밥 먹고 물만 마시나 봐.





    근무 시간 중 3분의 1은 설거지를 했다. 그보다 더 할 때도 있었다. 남들 같으면, 최저시급 아주 알차게 부려먹네 불평하면서 근로했을 수 있다. 불평조차 안 했을 수도 있지! 나도 갓 20살, 21살 땐 그렇게 긍정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내 체력은 쓰레기였고, 나는 (그땐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병들어 있었으며, 설거지장의 싱크대 높이는 요통을 유발하기에 딱 좋을 정도로 낮았다.


    설거지 업무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한참 떠들었는데, 사실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서 있는 것 자체가 내게 무리였다. 그게 무리가 될 줄 추호도 몰랐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오랫동안, 타의에 의해 서 있어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알바를 뛰었을 땐, 6시간도 거뜬했던 것 같은데… 6시간은 무슨, 2시간 만에 한계가 왔다. 휴식시간 30분을 제외하면 전혀 앉을 짬이 나지 않았다. 허리가 끊어지려고 했다.


    그렇게 첫 날을 마치고 돌아와 뻗었다. 다음 날은 아예 앓아누웠다. 거두절미하고, 온몸이 아팠다. 주제를 모르고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다니, 제정신이냐? 어디 뜨거운 맛 좀 봐라.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잠깐 잊고 있었던 허리 쪽 돌발통까지 재발했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통증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마음이 천지차이더라. 덜할 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통증이 돌아오니 일이고 나발이고 접시물에 코 박고 싶어 졌다. 엉엉.





    다행인 점은, 말했다시피 주 3일이라 격일로 근무했단 것이다. 하루 일하면 하루는 종일 쉴 수 있었다. 쉰다기보다 앓아누웠다고 해야 맞겠지만. 어쨌든 하루 온종일 지친 몸을 회복할 시간이 주어졌다.


    불행인 점은, 내가 하루면 지친 몸이 회복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단 것이다. 하나 더. 내가 하마터면 허리가 끊어질 뻔한 근무 첫날은, 실상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일 뿐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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