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렇게 아프거나 저렇게 아프거나
정신과 약물 부작용 일대기
섬유근육통과 약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무리 자연주의 치료를 지향한다고 한들, 당장 격통이 찾아온다면 진통제를 찾아먹어야 한다. 섬유근육통 진단이 내려지는 순간 1차 치료제로 항우울제 및 항경련제가 처방될 것이다. 섬유근육통 환자라면 심발타(성분명: 둘록세틴)와 익셀(성분명: 밀나시프란) 리리카(성분명: 프레가발린)를 모를 수 없다. 빈뇨와 야간뇨가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는 류마티스내과에서 야뇨증에 효과를 보인다는 에나폰정(성분명: 아미트립틸린)을 1차로 처방받았다.
약물 이름만 줄줄 늘어놓으니 재미가 없다. 보다 재미있는 얘기를 해볼까? 나는 류마티스내과에 내원하기 전부터, 상기한 약물에 익숙했다. 둘록세틴과 밀나시프란, 아미트립틸린은 항우울제거든. 왜 항우울제를 섬유근육통에 쓰느냐? 왜냐하면, 임상 시험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농담이고, 정확한 정보는 의사에게 묻는 편이 낫겠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섬유근육통 환자의 중추신경계에서 세로토닌 대사가 감소되어 있으며 스트레스에 대한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 반응이 감소되어 있고, 자율신경계의 기능 부전이 오는 등의 이상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그래서 신경전달물질(빌어먹을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불균형을 조절하는 약물, 즉 항우울제로 그걸 조절하기로 한 것 같다.
서문이 길었다. 다 이유가 있다. 섬유근육통 때문에 약을 먹느라 이렇게 고생을 했어요, 하기엔 병력이 짧다. 그러나 설명한 대로 섬유근육통에 사용하는 약과 정신질환에 사용하는 약물은 일견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질병기에 끼워넣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과 약물 부작용 일대기를 말하라면 밤새도록 말할 수 있다. 나는 1000명 중 1명이나 있을까 말까 한, 약물에 오지게 민감한 환자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0.01%라는 수치는 내가 만들어낸 숫자가 아니라, A정신과 의사가 진료 중에 내게 했던 말이다.
정신과 약물에 관한 많은 선입견이 있다. 약이 독하다거나, 부작용이 심각하다거나, 먹으면 바보가 된다거나 등등. 그런 선입견을 향해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네, 반쯤은 사실입니다… (아니, 실은 반보다 더요.)
여기까지만 읽고 분노하지 말라. 겪은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이런 발언이 불러올 위험을 알고 있다. 약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정신과에 내원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발목을 더욱 붙잡는 역할을 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는 부작용을 숨기지 말라. 부작용을 겪은 당사자의 경험을 무시하지 말라. 당장 내가 복용 중인 약물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간단하게 수많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이상반응이 ‘있었다는’ 뜻이다. 10명 중 1명이든, 100명 중 1명이든, 나처럼 1000명 중 1명이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오만가지 부작용을 호소할 때, 가장 흔하게 들은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럴 확률은 낮은데요.’
그럴 때마다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지금 그렇다고요!
현재 다니는 C정신과를 계속 다니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가 이거였다. 약물 부작용에 대한 의사의 대응. 내가 말도 안 되는 용량(이를테면 알약 반 쪽)에 부작용을 겪어도 그걸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게 너무 생소하고 고마웠다. 정신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신경과, 내과 등을 전전하며 수많은 의사를 만나왔지만, 약물 부작용을 인정하는 의사 자체가 드물었다.
흔하고 가벼운 것부터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중한 것까지, 다양한 약물 부작용을 겪었다.
맨 처음 정신과 약물 복용을 시작했을 때, 졸음이 심했다. 책을 봐야 하는데 졸아서 곤란한 정도가 아니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리가 풀릴 정도의 졸음이 몰려와, 중도에 지하철에서 내렸다. 플랫폼에 있는 벤치에 홀린 듯 가서 앉았다. 그대로 가방에 고개를 박고 기절하다시피 잤다. 족히 한두 시간을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예 벤치에 드러누운 적도 있다. 누군가 깨워서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으면 위험하다며. 알면서도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후에 약 종류를 바꿨다. 의사는 이런 낮은 용량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약을 바꾸고 나서 하지불안증후군이 온 적이 있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수면장애가 심한 시기였는데, 이것 때문에 잠을 못 잤다. 약 기운에 짓눌려 기절하기 직전까지, 다리를 떨다가 잠들었다. 더러는 피부에 벌레가 기어가는 감각이라던데, 나는 피부 아래로 혈액이 도는 게 기괴하리만치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각이라 느꼈다. 새벽에 깨면, 정신이 들기 무섭게 다리를 꼬고 비틀었다. 의사에게 증상을 호소하자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증상 완화를 위해 약물 라인업을 교체하자 호전되었지만, 하여튼 그럴 리가 없단다.
아직 앓는 배뇨장애 또한, 비뇨기과에선 정신과 약물의 영향이 있을 거라 (드물게도 자신 있게) 말하더라. 우울증과 불안장애, 수면장애로 인해 처방한 약물이 방광 기능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어떤 약물이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주면 제외하겠다고 비뇨기과 의사에게 처방전을 내밀었는데, 모든 약물이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꼽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 배뇨장애 때문에 정신이 쇠약해졌다. 먹고 자고 싸는 삼대 욕구 중에서 싸는 게 마음대로 안 되는데 그럴 수밖에.
점막이 말라비틀어지는 구갈口渴도 괴로웠다. 단순한 갈증 하곤 달랐다. 비뇨기과에서 처방받은 약물과 정신과 및 류마티스내과 약물의 부작용이 겹쳐(추정), 목이 미치도록 타던 때가 있었다. 혼자 있을 땐 아예 물을 머금고 지냈다. 그래도 물이 닿지 않은 식도는 바싹 말라붙었다. 구취가 심해져 사람 만나기가 꺼려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키는 만큼 물을 마시면, 배뇨장애 탓에 빈뇨가 심해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겼다.
메스꺼움 및 식욕부진은 하도 흔해 대부분의 환자가 겪었겠지만, 내게는 흔하다 해서 가벼운 부작용은 아니었다. 종일 이어지는 메스꺼움과 구역감으로 정신이 산란했다. 내장을 꺼내다가 찬물에 박박 씻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음식이 돌처럼 보이는 식욕부진으로 끼니를 챙길 의욕을 잃었다. 당연히 먹지 않았고, 체중이 계속 빠졌다. 1달에 1kg씩 쭉쭉. 가족과 의사는 내게 ‘밥을 먹으라’고 부탁했지만, 정말 어려웠다, 정말로. 쌀밥을 씹는 것 자체가 역겨웠으니까.
꾸준한 체중감소로 BMI 지수가 15 초반까지 내려갔다. 체력이 떨어져 일상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작아서 못 입었던 슬랙스가 흘러내려서 간신히 장골에 걸쳤다. 고무줄이 짱짱한 바지가 아니면 맞는 옷이 없었다. 좋아하던 블라우스, 치마, 셔츠, 바지… 어느 것 하나 맞지 않았다. 한 번은 옷을 고르다가 약속에 늦었다. 당연히 맞으리라 생각한 옷이 막상 입어보니 못 봐줄 만큼 헐렁했다. 당황해서 옷장을 엎었다. 원피스를 간신히 찾아 걸치고 나갔다.
인지 저하와 기억력 장애, 발음이 어눌해지는 증상도 왔다. 훗날 얘기할 텐데,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무렵에 건망증이 심해졌다. 조금 전에 들은 고객의 말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실수가 생길까 봐 극도로 불안했다. 본래 발음이 좋지 않아 일할 때는 신경 써서 발음하는 편이었는데, 입술과 혀가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어눌한 말씨가 나왔다. 더듬거나 말이 꼬이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것도 의심되는 약물을 바꾸고 나아졌다.
가장 질겁했던 부작용은 단연 복시였다. 동해안으로 여행 갔을 때 일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알람을 맞춰놓고 잤다. 일어나 암막커튼을 걷었더니, 떠오르는 해가 두 개였다. 같이 간 언니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해가 둘이야? …물론 세상이 개벽하지 않는 이상 그럴 리 없다. 발코니 밖을 내다보았다. 홀로 온 여행객이 둘로 보였고 손 잡은 커플이 넷으로 보였다. 몇 시간 뒤 증상은 호전되었다. 안과에서 검진했는데, 눈에는 이상이 없으며 특정 약물 부작용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프거나 혹은 저렇게 아프거나…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들.
질환이 더 괴로운지 약물 부작용이 더 괴로운지 골라야 하는 상황이 연거푸 왔다. 많은 경우 후자였고, 수도 없이 약을 바꿨다. 용량과 종류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B정신과는 약물 부작용에 대한 대응이 미온적이라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으나) 아예 병원을 옮기기도 했다. 주요한 약물인데도 의사와 상담한 후 아예 복용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리리카 캡슐이 내게 그랬다.
그러나 부작용보다 약물로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해, 아침저녁으로 위장약을 추가해가며 복용을 계속한 적도 있다. 파록세틴이 그 경우였다. 지겹게 메스꺼웠으나, 나를 효과적으로 재워주어서 도저히 약물을 뺄 수 없었다. 졸피뎀과 신경안정제를 먹고도 두어 시간은 가뿐히 깨어있던 나를, 30분 만에 뒷목을 치는 것처럼 기절시키는 파록세틴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결국은 위장약도 메스꺼움을 누르지 못해 교체했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을 복용한다. 복용하고 있고, 필요하면 앞으로도 복용할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그래, 이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고도. 왜?
이유를 말하자면, 결국 지루한 소리로 귀결한다.
1. 약물 부작용은 담당의와 상담 끝에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의사는 약물에 대해 나보다 많은 임상과 지식을 가지고 있고, 미리 부작용에 관해 물어보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미 부작용이 일어났더라도, 대개의 경우 약물이 몸에서 빠져나가면 호전된다. 문제가 생기면, 종류와 용량 모두 조절할 수 있다. 약물의 세계는 깊고도 넓다… 나처럼 매주 부작용을 스피치하고 약을 바꿔달라고 호소하는 환자에게도 듣는 약이 있다. (나는 이게 정말 신기하다…) 참고로 나는 현재 큰 부작용 없는 약물에 정착해 꽤 오래 같은 약을 복용 중이다.
만일 당신의 의사가 내가 겪었던 몇몇 의사처럼, 환자에게 일어나는 부작용을 부정하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전원轉院을 권하고 싶다. 전지적 환자 시점에서, 그는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의사분들이 이런 환자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전지적 의사 시점에선 제가 좋은 환자로 보이지 않을 수 있겠죠… 미안합니다…
2. 약물이 필요하다면, 제 때 복용해야 한다. 나는 부작용에 겁을 먹다 못해 질려서 단약과 복약을 반복해왔다. 그 짓거리만 안 했어도 우울증으로 덜 고생했을지 모른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건 아주 중요하다. 섬유근육통에 관해선 단언할 수 없지만, 관리 없이 통증을 방치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사가 많더라. 신경이 통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통증을 과하게 착각하지 않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관리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걸 돕는 게 신경병증성 통증에 쓰이는 약물이고.
3.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약물은 삶의 질을 높인다. 이렇게 아픈 것보다는 저렇게 아픈 게 낫다고 느꼈단 거다, 나는. 물론 효과적인 비약물적 치료법도 많겠지. 그러나 당장 새벽에 요의로 수 번씩 깨고, 안정제 때문에 가눌 수 없는 몸을 질질 끌고 화장실에 갔는데도, 소변 지연으로 일을 보지 못해 아랫배를 눌러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더는 약을 늘리기 싫어도 늘리게 되더라. 그 꼴 보기 싫어서. 나는 그랬다. 통증을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최대 목표인 내게, 진통제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남에게 도저히 정신과 약물 복용을 권할 수 없다. 감히 정신과 내원을 권할 수도 없다. 정신과 문턱에 발을 디디는 순간 끝이 아니라, 거기가 시작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과에 가지 않고 버티는 모두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버티고 있다면, 약물은 당신에게 가장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도움을 주는 아군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어느 정도 검증되었으며 통제 가능한 아군이다.
이 정도면, 최악의 선택이라고 하긴 어렵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