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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Oct 23. 2019

8. 나, 중도휴학했다





    실은 전과를 했었다. 현재 나는 아동보육학과 휴학생이다. (뜬금없죠?) 문예창작과를 지망했으나 실패했고, 할 만큼 했으니 글쓰기는 취미로 미루자고 생각했다. 이보다 건강했을 때, 어린이를 대하는 아르바이트를 우연히 경험했다. 뻔하게도, 전과의 계기였다. 전공생으로서 이런 발언이 옳은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동을 마냥 귀여워하거나 예뻐하지는 않는다. 100명의 아동이 있으면 그 100명이 전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한다. 몸이 덜 자라 작을 뿐, 성인과 똑같은 개별의 인격체다.


    ‘나는 아이를 좋아해’라는 말은, ‘나는 여자를 좋아해’, ‘나는 선생님을 좋아해’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인가요? 어떤 선생님을 좋아한단 말인가요? 그런고로 ‘나는 아이를 좋아해’라는 문장은 부자연스럽다. 그런 것치곤 자연스럽게 쓰인다.


    사람들은 내가 아동보육학과에 다닌다고 말하면 쉽게 감탄한다. 우와, 애들 좋아하나 보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대체 어떤 아이 말이에요? 물론 상대방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며, 나도 최소한의 사회성은 있으므로. 웃으면서 답한다. 하하, 애들 좋아해요. 너무 귀여워요!


    빈말에 가까운 인사를 받고 삐딱하게 구는 내가 꼬였다는 것은 안다. 다만 하고 싶은 말: 아동은 귀여운 장난감처럼 한 집단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란 것. 나는 그런 아동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보육교사가 되고 싶었다. 취업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그런 포부가 있었던 나는 실습을 구경도 못한 채…





    중도 휴학 절차 자체는 간단했다. 전체에 걸쳐 가장 난도가 높은 과정은 ‘학과장 면담 후 서명’이었다. 왜 난도가 높았느냐.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어른을 몹시 어려워하는 성격이라 그렇다. 왜 학생 때 보면 선생님에게 싹싹하고 자주 교무실에 들르는 친구들 있지 않나. 나는 그런 학생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학생이었다. 심지어 학과장님은 정년이 가까운 노교수셨다. 엄청나게 어른인 셈이다. 무서워라!


    두 번째가 더 중요하다. 거짓말을 해야 해서 힘들었다. 정확한 휴학 사유는 ‘이대로 학교에 다니다간 자살할 것 같아서’였지만, 이해받기 쉬운 신체증상만을 핑계대기로 마음먹었다. 정신질환을 숨기기로 한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에 반대하지만, 교수님에겐 그럴 수 없었다. 혹시 실습지에 갈 때나 먼 훗날 취업할 때 영향이 미칠까 겁이 났다. 정신질환자에게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그리 떠들었으면서, 결국 내 일에선 한 발 물러서게 됐던 거다. 한심하게도.


    학과장님에게 메일을 썼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하 인사말 생략) 최근 들어 출결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중도 휴학 관련으로 면담을 요청하고자 메일을 드립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한참 망설였다. B에게 말했던 것처럼, 주변인들은 모두 내가 허리가 아픈 줄 알았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허리뿐만 아니라 머리 어깨 무릎 발이 다 아팠을 뿐. 그러나 구구절절하면 말이 꼬일 것 같았다. 나는 요통으로 사유를 압축하기로 정했다.


    ‘요통으로 인해 학업에 지장을 겪고 있어 중도 휴학을 하고자 합니다. (중략) 휴학 기간은 1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가능하신 면담 일자와 시간을 말씀해주시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하 인사말 생략)’. 학과장님은 머지않아 답장을 주셨다. ‘요통이 심해서 괴롭겠습니다.’ 걱정 담긴 문장을 보고 눈물이 찔끔 났다. 며칠 뒤 연구실에서 뵙기로 했다. 면담 날짜와 시각을 재차 확인한 뒤 휴대폰을 내려놓자 손이 떨렸다.





    거짓말 연습을 했다. 시나리오를 짰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요통이 심해졌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치료를 받으려니 한계가 있었습니다. 쉬면서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학과장님의 예상 질문을 상상해보았다. 왜 휴학을 하나, 학교에 다니면서 치료하지? (어… 글쎄요 그러게요…) 출결이 안 좋던데 그게 허리 때문이었나? (예? 허리… 때문인 날도 있었고…) 쉬는 동안 무슨 치료를 할 예정이지? (그게… 할 만한 건 이미 다 해봤는데…) 운동은 해봤나? (해도 안 나아져서…) 자네, 놀고 싶어서 중도 휴학을 하는 건가? (아닌데요 엉엉…)


    상상 속의 학과장님은 늘 맹공을 퍼부었다. 나는 공포에 떨었다. 픽션 에세이를 쓰면서 이런 말을 하면 웃기지만, 나는 거짓말이 서툴다. 연습을 해 가야 입이라도 뗀다. 노력형 거짓말쟁이다. 연습을 진짜 많이 했다. 물리치료랑 도수치료에 주사까지 맞아봤는데 효과가 없어서요. 학교를 다니다 보니… 제가 통학을 또 먼 곳에서 하고. 휴학을 하면서 치료를 제대로… 그게 아무래도 학교를 멀리서 다니다가 보니까…(횡설수설)


    점차 최악의 시나리오만 떠올랐다. 당일, 연구실에 다다르기 전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나는 학과장님 앞에서 헛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정신병에 관해 털어놓게 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엉엉 울면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가엾은 마음에 바로 휴학을 승인해주실까? 정신병자라고 낙인이 찍히면 앞으로 학교 어떻게 다니지? 아니 낙인이라니, 나는 실제로 정신병자인데! (매드 프라이드)


    면담 시간이 왔다.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노크를 했다.


    



    나: 안녕하세요. (최대한 밝게 인사했다가, 직후에 아파 보이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학과장님: 왔어? 여기 앉아. 커피 마시나? 차는? (대단히 고소한 우엉차를 우려 주셨다)


    내 극심한 불안과는 달리, 학과장님은 상냥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예상 질문은 거의 적중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학과장님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셨다. 심하게 긴장해서 대화의 전문이 기억나지 않는 게 아쉽다.


    학과장님: 다른 생각 하지 말고, 1년 동안 낫는 것만 생각해.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공부도 하지 말고. 그저 치료만 다니고 운동만 다녀. 나아야 다른 일도 하는 거지.

    나: 네… (눈물을 참는다)

    나: 제가 걱정인 건, 앞으로 이쪽 일을 못 하게 될까 봐…

    학과장님: 아니야, 자네 무슨 소린가? 내가 아는 어느 교수도 허리가, 디스크가 터졌나 그랬어. 꼼짝을 못 하고 화장실을 기어서 갔었다네. 그런데 치료받고 수영을 열심히 다녀서, 지금은 다시 이쪽 일을 한다고. 옛날처럼 아무렇지 않게. 응? 그러니까 나을 생각만 해.

    나: (눈물을 참는다)


    학과장님은 수영의 중요성을 10번은 강조했다. 운동하라는 조언을 반기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찔찔거리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주느라 우엉차를 남겼다. 학과장님은 덜컥 서명을 해주셨다. 감사하다고 여러 번 인사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나오는 길에 지도교수님을 마주쳤다. 너, 수업 안 나오니? 눈에 힘이 풀린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건강 문제로 휴학을 하게 되어서 자세한 건 메일로 말씀드리겠습니다…(훌쩍)


    바로 서류를 제출했다. 전산 상으로 며칠 내에 휴학 처리가 될 거였다. 머나먼 학교에는 다시 올 일이 없었다. 학교를 나섰다. 오전 수업이 한창인 시간대라 교내는 한산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 학교에 안 와도 돼. 책 떠메고 붐비는 지하철에 오르지 않아도 돼. 쉬는 시간에 쫓기며 식사를 뱃속에 욱여넣지 않아도 돼. 과제 때문에 허리를 붙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돼. 이제 학교에 올 필요 없어. 난 휴학했으니까.


    나 휴학했다.

    입속말로 중얼거려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버스정류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머잖아 버스가 왔다. 나는 그걸 타고 학교를 떠났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지 못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글을 몇 번에 걸쳐 나눠 썼다. 기억이 흐린 것도 있고… 쓰기 힘들었다. 글 속 시점까지, 나는 ‘아무리 늦어도’ 1년이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길게 잡은 거였다. 시험기간에 생긴 요통이 온몸으로 번지고, 일상을 산산이 망가뜨릴 줄은 일절 예상 못 했다.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 정신질환을 숨겼던 거다. 아픈 몸을 보육교사로 써먹을 수 있도록 고쳐놓고도 싶었다. 이제는 솔직히, 그렇게 체력을 요하는 직업은 어려울 것 같다.


    4월 초까지만 해도 몇 주 뒤, 몇 달 뒤의 약속을 잡고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나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으니까. 이제는 당장 눈 앞에 닥치지 않으면 약속에 확답하지 않는다. 먼 약속을 잡으려면, 몸이 아파서 갑자기 못 가게 될 수도 있다고 언질을 준다. 내년의 계획, 내후년의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얼마나 아파질지 또 어떻게 아파질지, 무슨 수로 알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겠지. 그러나 긍정에 여러 번 배신당해본 사람은 안다. 긍정이 나를 배반할 때, 등짝을 얼마나 아프게 찢어발기는지. 그리고 비관론에 기대는 거다. 비관은, 어둡고 조용하고 안락하다. 익숙한 문장 아닌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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