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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Apr 11. 2020

18. 섬유근육통을 진단받기까지




류마티스 내과를 찾아간 계기는 다음과 같다. 당시 복용하던 약물(둘록세틴)이 무슨 약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했다. 첫 번째로 우울장애 치료에 쓰인단다. 나는 우울증이 있으니까 물론 그렇겠지요. 두 번째로는 섬유근육통 치료에 쓰인단다. 섬유근육통이 뭐지?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그 또한 검색했다.


검색 결과가, 내가 겪고 있는 증상하고 무서울 정도로 똑같았다. 무분별하고 원인 모를 만성 통증, 아침에 유난히 심해지는 경직감, 감각 이상, 수면 장애, 과민성 방광(이건 따로 두 편은 잡고 쓸 예정임. 배뇨 장애 농담 빼고 좆같음), 비심인성 흉통 등등. 엄마에게 보여주니 완전 너잖아! 그랬다. 내가 봐도 완전 나였다.


그런데 나는 내가 섬유근육통이 아니길 바랐다. 이제 확진을 받았으니까 할 수 있는 소리임. 인터넷은 방대하고 박식하여 나에게 많은 정보를 보여주었는데, 수많은 관련 정보 죄다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인 모름. 예후 환자에 따라 다름. 완치는 글쎄요? 누구도 섬유근육통에 확신이 없어 보였다. 환자고 의사고 전부.


그런 미지의 질환에 걸리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렇잖습니까? 병에 걸려도 치료법이 있고 나을 희망이 있는 병이라야 아프지만 청춘이다 하면서 극복을 해보지, 이건 뭐 씨발. 그러나 정황상 확률이 높아 보였고, 나는 이미 통증의학과와 정형외과와 한방병원서 병명 찾기에 좌절다. 나는 절벽에 몰린 심정으로 류마내과에 내원했다.


진실로 절벽이었다. 류마내과는 최후의 보루였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내가 왜 아픈지 병명을 알려줘! (근데 되도록 가볍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면 좋겠다!) 그런 심정으로 접수하고 기다렸다. 내원한 류마내과는 개인병원치곤 규모가 크고 환자가 많았다. 예약을 받지 않 당일 접수 시스템이라, 대기가 끔찍하게 길었다. 나는 보통 1시간 기다렸. 시름시름 앓으면서.


진료를 봤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고통의 일대기를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검사를 해야 한댔다. 섬유근육통은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통증 정도를 체크하는 검사지를 참고하여 배제진단을 내린다. 배제진단(diagnosis by exclusion)이 뭐냐면. 나는 의료인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말할 수 없는데, 설명을 들은 바로는. 섬유근육통 자체를 잡아내는 검사는 없으므로, 의심되는 질병을 모두 검사한다. 의심 질병이 음성이라면 배제하고 배제해서, 결국 아무런 질병이 나오지 않았을 때 섬유근육통 확진을 내린다는 말이다.


검사지는 류마티스 내과마다 조금씩 다르다.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디자인과 인쇄에 들였으리라 짐작되는 비용 정도?) 공통적으로 얼마나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있는지, 통증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 통점이 어디인지 따위를 체크하게 되어 있다. 참고로 당시 나의 일상 수행력은 처참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한 사람처럼 지내고자 하는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4시간 근무하고 난 다음 날 아침은 끔찍했다. 잠이 덜 깬 채 뭉친 근육을 폼 롤러로 풀었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배제진단을 위해 피를 많이 뽑았다. 나는 라인이 잘 잡히는 혈관과 얇은 피부를 가진, 축복받은 환자라 주사 바늘엔 아무런 공포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몸에 피가 부족했다. (혈액 순환이 잘 안 돼서 그런 건지? 정확히는 모름) 활한 채혈을 위해, 간호사 선생님은 내게 잼잼 하라고 하셨다. 주먹을 쥐었다가 펼 때마다 피가 뿅뿅 나왔다. 그러자 실시간으로 손바닥이 창백해졌다. 사람의 피부 아래엔 정말로 피가 돌고 있구나! 혈색이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나는 감탄했다.


그리고 1주인가 2주 뒤에 결과를 듣기로 했다. 물을 처방받긴 했는데, 그 파랗고 예쁜 약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다음 편에 씀.


요즘은 경추 통증과 후두통을 심하게 느낀다. 덕분에 도수치료를 받고 있다. 모가지가 쉼 없이 아파서 가끔 요통을 잊을 정도다. 공포도 불안도 없이 오직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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