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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May 06. 2020

22. 더는 해드릴 치료가 없어요


과민성 방광 치료 과정을 이어서 적으려 했는데, 일기를 읽다 보니까 시간 순서대로 적어야겠다 싶어서 이걸 먼저 적는다. 자살 충동과 시도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가 있음.


과민성 방광과 통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나는 류마티스내과에 다녔다. 둘록세틴과 밀나시프란은 이미 정신과에서 처방받아 꾸준히 먹는 중이었다. 류마내과에서는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는 비타민B와 진통제인 울트라셋, 근육이완제 등을 줬는데 유의미한 수준으로 통증이 완화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약을 먹으며 병원에 갔다. 의사가 나를 봐주고 있다는 안정감이 좋았다.


이때 그 유명한 리리카정(성분명: 프레가발린)도 먹어보았는데, 유일하게 진통제가 아닌 약물로 통증이 호전되었다. 문제는 부작용이 심했다. 몹시 멍하고 어지러웠다. 휘청거리다가 넘어져서 책상에 머리를 부딪쳤다. 아르바이트를 다녔는데 차도를 옆에 두고서도 걸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중단했다. 희망을 잠깐 쥐었다가 놓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일들이 남에겐 일상이라는 사실이 괴로워서 매일 죽고 싶었다.


그리고 2019년 9월.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씻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이 아팠다. 청각과민이 심해져서 빗소리가 심한 소음으로 들렸다. 그 때문에 더운데 창문을 열 수 없었고, 소변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귀를 막고 가야 했다. 류마내과에 갈 예정이었지만,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손발이 저리고 무기력감이 심했다. 날씨가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한다.


피검사 결과만 듣기 위해 전화했다. 뜻밖에 의사 선생님과 통화 연결이 되었다. 선생님은 검사상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염증 수치도 낮다고 했다. 필요하면 내원하라고 했지만, 솔직히 지금의 약물치료 이상으로는 (이 병원에서) 더 제안할 치료가 없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최선을 다해 나를 봐주었다. 좋은 분이었고 나의 증상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병으로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나는 아주 절망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일기를 옮기자면: 이런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이 살아있으면 삶이라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원했던 최소한의 삶의 형태(대졸 후 취업)가 있었는데 침대에서 못 움직이면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삶은 죽어있느니만 못 하다고. 그리고 일차원적으로 그냥 너무 아팠다 몸이 허리가 골반이랑 다리가


그리고 죽으려고 했다. 다음부터 일기에서 옮김: 취침약을 먹고 목을 맸는데 어떻게 해도 매듭이 풀렸다. (멍청해서 매듭도 못 묶는다) 식칼을 가져왔는데 아무리 해도 피가 철철 날 정도로는 그을 수 없었고 화가 나서 슬퍼서 손톱 칼로 허벅지를 많이 긋고 긋다 보면 아픔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리 해도 식칼은 아팠다. 이러는 동안 수건을 쓸 정도로 많이 울었고 다 울고 빨래통에 넣었다. (친한) 언니한테 죽고 싶은데 죽을 수가 없어 어떡하지 하고 카톡을 보냈더니 전화가 왔다 전화로 밥은 먹었냐고 뭐 먹었냐고 영화 봤던데 (왓챠 계정 공유 중이었다) 무슨 내용이었냐고 죽음이랑 아무런 관련 없는 통화를 2시간인가 했고 진정이 되어서 상처 소독하고 후시딘 바르고 칼 집어넣고 줄도 집어넣고 잤다.


그러니까 언니가 나를 살린 셈이다. 돌이켜보면 언니는 말도 안 되게 침착한 대응을 했다. 나라면 그러지 못 했을 거다. 이 날 말고도 언니는 나를 여러 번 살렸다. 읽는지 모르겠지만, 언니에겐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


개인병원에서 해줄 치료가 없다니까, 2차 병원에 갔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명의를 찾아갈 기력은 없었다. 가까운 종합병원의 류마티스내과에 갔다. 증상을 설명할 기운도 없어서 미리 적어간 종이를 내밀었다. 아래 내용이 더 있는데 신체 증상이 아니라 과민성 방광이랑 정신과 얘기라 자름. 뒷장에는 부작용이 있었거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약을 적어갔다. 물론 섬유근육통 검사지도 꼼꼼하게 채웠다.



의사 선생님은 모든 자료를 살피더니 ‘이건 말할 것도 없이 섬유근육통이군요’라고 했다. 즉시 섬유근육통에 관한(이미 알고 있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진통제인 트리돌(성분명: 트라마돌염산염)을 처방해주었다. 내성이 생기는 약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의존이 생길 수 있으니 통증이 최고조에 다했을 때 먹으라 했다. 당일 먹어보았더니 미미한 어지럼증 말고는 부작용이 없었다. 5시간가량 기적처럼 모든 통증이 사라졌다.


그게 지금 나에게 듣는 유일한 진통제다. 나는 트리돌이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언젠가 트리돌도 듣지 않는 때가 올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면 두렵고 떨려서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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