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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May 06. 2020

21. 과민성 방광은 좆같다


과민성 방광은 내가 섬유근육통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벼르고 있었던 소재다. 과민성 방광은 단일한 증상만으로도 (섬유근육통으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통증과 감각 이상에 맞먹을 정도의 좆같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의 질과 존엄을 박살 내며, 나의 정신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주었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쓸 때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아하고 고상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과민성 방광에 관해서는 여유를 가질 자신이 없다. 이건 진짜로 좆같다. 만일 당신이 알고 있는 단어 중 ‘좆같다’보다 더 상스럽고 악랄한 단어가 있다면 얼마든지 대체해서 읽어도 좋다. 나는 평상시 욕설을 잘 사용하지 않으므로 저게 최선이다.


섬유근육통 환자에게 과민성 방광은 흔히 발생한다. 2010년 섬유근육통 진단 기준 속 41가지 전신 증상 내에는 빈뇨와 배뇨통, 과민성 방광 3가지 증상이 포함되어 있다. 2007년도에 발표된 근골격계 통증 저널에 실린 연구에서는 40명의 과민성 방광 환자와 40명의 일반인 대조군을 비교했는데, 과민성 방광 환자 중 30%가 섬유근육통을 호소했고 일반인 중에는 5%만이 섬유근육통을 가졌다. 반대로 2007년 미국 섬유근육통 협회에 등록된 회원을 대상으로 실행한 연구에 따르면, 2569명의 섬유근육통 환자 중 26%가 과민성 방광 등의 방광 이상을 호소했다고 한다. (출처)


솔직히 대조군이고 퍼센트고 나발이고 나한테 일어나면 100퍼센트니까, 저런 연구는 나에겐 아무 의미도 없다.


과민성 방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아무 이유도 없이 소변이 마려워지는 주기가 짧아졌다.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했다. 1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간 지 며칠이 되자 이상을 느꼈다. 소변이 마려워도 참기 힘들어졌다. 분명 마려워서 변기에 앉았는데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소변을 끝까지 쌌는데도 방광이 무언가 남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증상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빈뇨·절박뇨·소변 지연·잔뇨감·야간뇨는 순식간에 심화되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내과(신장내과 전문의가 있었다)에 찾아가 방광염에 관련된 약을 처방받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종합병원의 비뇨기과를 찾아갔다. 요새는 인식 개선을 위해 비뇨의학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하는데, 나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 했다. 대기실에는 남자와 노인이 가득했다. 대부분 남자 노인이라고 해도 옳았다. 그곳에서 나는 샛노란 탈색머리를 한 채 짧은 반바지를 입고 대기했다. 부끄러웠다. 탈색모가 창피했는지 반바지가 창피했는지, 아니면 젊은 나이에 방광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창피했는지는 모른다.


비뇨의학과에 내원하는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이 수치스러우라고 쓰는 글이 아니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비뇨기과에 내원하는 젊은 여성의 경험담이 얼마나 귀했는가 하면, 나는 요역동학 검사를 받기 전날 자기 직전까지 후기를 찾아보았는데, 구체적으로 쓴 여성의 후기를 찾을 수 없었다. 남자가 쓴 후기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과민성 방광을 겪은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적는다. 어느 선을 넘으면 브런치에서 글이 잘리는지 모르겠지만, 되는대로 최대한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쓰려고 한다. 청결하고 멀쩡한 문장만 적힌 글을 읽고 싶으면 다음이나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보면 되니까.


당시 나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증상과 증상을 설명하는 행위에 권태하다 못해 지쳐있었으므로, 남자 의사에게 개인적이고 내밀한 생리활동을 보고하는 일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1분이라도 나의 화장실 가는 주기를 늦춰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첫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은 이전 내과에서 먹던 약이 ‘옛날에 쓰던 약’이라고 말했고 ‘더 좋은 신약이 나왔으니 그걸 씁시다’라고 했다. 요속검사를 했고, 다음 내원일 3일 전부터 배뇨일지를 쓰게 했으며, 다음 내원일에도 요속검사가 예약되어 있으니 소변을 참고 오라고 말했다.


좋은 신약의 정체는 베타미가정 50mg이었다. 성분명으로는 미라베그론이라고 한다. 이 약물은 방광의 교감신경 수용체에 선택적으로 작용하여 방광 배뇨근을 이완시킴으로써 빈뇨, 요절박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고 한다. 그걸 매일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한댔다. 기저질환을 설명할 때 우울증, 불안장애, 섬유근육통을 이미 보고한 나는 신경증 환자답게 신경질적으로 질문했다.


나: 만약 먹는 시간을 놓치면 어떡하죠?

의사: 1시간 정도 차이 나는 건 상관없어요.

나: 만약 1시간보다 더 늦어지면 어떡하죠?

의사: 2~3시간까지도 다른 약이랑만 안 겹치면 괜찮아요.

나: 만약 다른 약이랑 겹치면 큰일이 날까요? 까먹어서 3시간 이상 지나버리면 어떻게 하죠?

의사: (잠시 침묵하다가) 그냥 그 날 안에만 드세요.


그제야 나는 안심했다. 의사 선생님이 이 신경질적인 환자를 배려하여 관대한 대답을 내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매일매일 약 먹는 시간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 했을 것이다. 웃으라고 적은 소리 같겠지만, 이건 농담이 아니다.


약을 처방받아먹기 시작하면서 증상은 약간 완화되었다. 그건 바꿔 말하자면 아직 증상이 남아있다는 뜻이며, 여전히 좆같은 상황에 빠져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매일 약을 먹어도 과민성 방광 증상은 좋아졌다가 나빠지길 반복했다. 가끔은 내가 약을 먹는 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래서 신경증 환자다운 의심으로 약을 끊어보았을 때가 되어서야, 베타미가정이 내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절절하게 깨달았다. 하여튼 하루 종일 약을 먹었다. 임파선염 같은 이벤트가 등장하면 하루에 시간차를 두어가며 20알 정도의 약을 챙겨 먹어야 했다. 그러면서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하고 주 2회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부지런하게 아팠다.


가뜩이나 우울증 때문에 지각 능력과 기억력은 떨어지고,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물건이 뇌인지 푸딩인지 분간이 안 가는 지경이었는데, 약을 빼먹으면 바로 금단증상이 왔다. 그렇다고 약을 챙겨 먹는다 해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거의 매일 죽고 싶었다. 전편에 언급한 일기장에 매일 죽고 싶다고 적었다. 죽고 싶은 이유는 다양했다. 대부분 이런 통증과 불편한 증상이 기약 없이 지속되리라는 절망감에서 기인했다.


문제는 고통이 무서워서 죽으려는데, 죽으려면 더 아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죽지 못하고 더욱더 아파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죽지 않고 계속 일기를 썼다. 과민성 방광으로 힘들었던 날에 쓴 일기 두 개를 옮겨보겠다. 이후 치료에 관한 과정은 다음 편에 적는다.


일기는 수면제와 필요시약까지 먹고 완전히 약에 취해서 썼는데, 그러지 않으면 쓰지 못할 만큼 감정적으로 비참했다. 반쯤 자는 상태로 써서 글씨도 문장도 엉망이고 날것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마음이 아플 수도 있으니까 준비하고 읽으세요.




내가 이 얘기를 쓰려고 오늘은 약을 먹고 쓴다. (오전) 2시쯤 자서 5시에 오줌이 마려워서 깼다.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았는데 방금 전까지 침대에서 나를 휘청휘청 걸어서 걸어오게 할 정도로 급했던 요의가 아무 데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약을 그 날 2시 넘어서 약을 먹어 아직까지 어지러웠는데 화장실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왔다. 다시 휘청거리면서 침대로 돌아가는데 뱃속에 뭐가 출렁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을 몇 컵 마시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변기에 앉았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나오지 않고 물 마신 배가 메슥거렸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는 (화장실 바닥의) 하수구 위에 쪼그려 앉았다. 거기가 방광을 더 잘 압박할 것 같아서. 그 위에서 힘을 줘서 간신히 볼일을 봤다.


내내 나는 너무 어지러웠고 어느 수준 이상의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졸렸다. 그래도 이불에 오줌을 지리거나 그런 일 없이 옳은 곳에서 옳은 일이 일어날 수 있어서. 방금 뭐라고 썼는지 잊었고 못 알아보겠다. 어쨌든 문제없이 해결된 상황이지만 나는 물을 마시고 다시 다리를 질질 끌어서 (화장실에 가서) 거기 쪼그리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우습고 수치스럽고 그랬다.





비뇨기과 방문. 2달 더 약 먹으며 증상 조절하기로. 요속검사 결과가 별로였고 나도 약을 끊기 무서웠음.


비뇨기과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소변을 참고 급하게 병원에 가는 것 버글버글한 노인과 중년 틈바구니에서 대기하는 것 커텐 뒤의 검사기 위에서 소변을 배에 힘주고 보는 것 밖에서 간호사가 타자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내 이름이 호명되는 것 내 머리가 노란 것 내가 23살인 것 이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겐 아주 수치스럽고 괴로운 일이었다. 병원에 가면 내 또래는 드물다. 동네 특성인지도 모름.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아줌마나 아저씨 사이에서 내 몸이 평균보다 얼마나 빨리 낡고 있는지 늘 생각한다. 그것을 얼마나 잘 고쳐서 오래 쓸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한다. 병원에 가면 생각이 많아지고 나는 병원에 자주 가며 오래 기다리는 편이다. 일주일이나 한 달이라도 좋으니까 몸과 정신 어디도 안 아픈 채로 살다가 죽고 싶기도 하고, 당장 죽여달라고 호소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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