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을 받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생일 적부터 매번 여름방학 일기를 몰아서 써냈던 무계획적 인간으로, 평생 다이어리와 연이 없었다. ‘다이어리 사서 2개월 꾸미고 방치하기’가 신년 행사였다. 그러던 내가 23살 8월에 비장한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건강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조건에서 몸 상태가 나빠지는지, 어떤 조건에서 몸 상태가 좋아지는지 알고 싶었다. 이를테면 전날 산책 1시간과 운동 1시간을 했는데 다음 날 꼼짝도 못 했다면, 내일부터 산책과 운동 시간을 줄이자! 전날 복약한 시각을 체크하고 약효가 듣지 않았다면 시간을 조절하자! 통증이 어떤 주기로, 어떤 강도로 오는지 기록해서 대비하자! 목적은 그러했다. 야무진 꿈이었다.
기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복약 시간/몸 상태/감정 상태/수면 시간/운동량/음수량. 더해서 하루 몇 끼를 먹었는지까지 체크했다. 꼬박 3개월가량 그 짓을 했다. 바꿔 말하자면 3개월 만에 때려치웠다는 소리다. 3개월 만에 그만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섬유근육통에 아무런 패턴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날 무리했다고 반드시 몸이 아프진 않다. 전날 얌전히 요양했다고 해서 다음 날 통증이 덜 하지도 않다. 똑같은 시간을 똑같이 움직이고도 2에서 통증이 머무르는 날이 있는가 하면, 7까지 통증이 치솟는 날이 있다. 증상도 부위도 멋대로 옮겨가며 변했다. 발의 감각 이상, 다리 저림, 목 결림, 두통, 팔의 신경통, 어지러움… 모든 증상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기록이 무의미했다.
둘째, 상태를 기록하면서 스스로 괴로웠다. 종일 어디가 얼마나 아팠는지 자기 전에 찬찬히 되짚어보는 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날것의 감정을 문장으로 정리하여 종이에 옮겨 적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나아지지 않는 매일이 고통스러웠다. ‘아프다’, ‘나아지지 않는다’, ‘나빠지기만 한다’는 문장을 꾹꾹 눌러쓰면서 마음이 아팠다.
일기 쓰기를 그만 두기 며칠 전 페이지에 나는 다음처럼 적었다. ‘약을 이렇게 많이 먹고 있는데 점점 나빠지기만 하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젠 아픈 게 당연하게 느껴져서, 낫는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린다’. 이쯤 되면 일기가 우울을 재생산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기를 쓰던 무렵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는 질환을 잘 관리하며 사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까지 몸을 쓸 수 있는지, 얼마나 외출할 수 있는지, 일주일에 얼마나 일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강도로 일해야 할지 등등.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만의 질환 메뉴얼을 완성한 듯했다. 나도 나을 수 없다면 그런 방식으로 살고 싶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무력감이 심했다.
다만 좋은 점도 있다. 일단 정신과 진료할 때 횡설수설할 필요 없이, 일기장만 내밀면 돼서 편했다. 나는 말보다 글로 생각을 표현하기가 더 편한 사람이다. 또한 그 무의미한 짓거리 덕분에, 8월부터 브런치 작가가 되기 직전 10월까지 상세한 기록이 남았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에세이를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기쁘다!
19년 8월 26일의 일기를 옮기며 글을 마친다.
몸 상태: 빈뇨는 줄었는데 자기 전 소변보기가 어려워서 베타미가를 안 먹어봤음. 전신에 근육통(어깨, 골반, 다리 심함). 종일 근긴장과 가끔 근경련. 무기력감. 스트레스 상황에서 두통. 전날 외출(6시간)로 몸이 아플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새벽에 깰 정도로 아팠음(하반신 전체에 욱신거리는 통증). TV 소리나 물소리가 크게 들려서 불편(청각 과민). 오후 8시 반~10시까지 잠깐 잠들었고 깨자마자 심한 우울감을 느껴서 씻고 운동을 하자 조금 나아짐.
감정 상태: 종일 몸이 아파서 무기력하고 기분이 예민했다. 계속 누워 있었다. 할머니가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서 운동을 하라고 말씀하셔서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로 인해 자살 충동(상세하게 옮겨 적지 않음)이 들었다. 밤에는 구체적인 자해 충동(옮겨 적지 않음)이 들었다. 가족에게 괜찮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