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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자연 숭고와 미학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승>

by 료료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edrich) 바닷가의 수도승, 1808-1810


그때, 독일은

1808년에서 1810년 사이,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프로이센(지금의 독일 지역 중 하나)은 나폴레옹에게 참패했다. 독일 사람들은 희망보다는 상실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독일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수도승의 존재감

<바닷가의 수도승>의 수도승은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이었을 까? 분명 수도승이라고 이름을 적었으니 맞을 수밖에 없다고 하겠으나, 뚜렷하지 않은 실루엣 덕분에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실제 수도승일 수도 있고, 프리드리히 자신의 분신일 수도 있겠지? 대자연 앞에 하염없이 작은 자신처럼 말이다. 그는 분명 서 있지만, 주변의 거대한 하늘과 바다에 삼켜질 듯 희미해 보인다. 마치 자연과 닮아가며,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여기까지 별생각 없이 감상을 해보다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 생각이 났다.


칸트의 숭고 vs 일상의 미학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자연 숭고’라는 개념을 말했다. 자연 숭고란 인간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다. 폭풍우, 끝없는 바다, 높이 솟은 산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처음에는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숭고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자각하는 경험이다. 칸트는 이런 체험이 결국 도덕적 자율성과 연결된다고 보았다. 즉, 자연 앞에서 우리는 작지만, 이성은 우리를 초월로 이끄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승〉은 이 칸트적 숭고를 그림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림에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작은 수도승이 있다. 바다는 인간을 집어삼킬 듯 광활하고, 수도승은 희미하게 서 있어 금방 사라질 듯하다.


우리는 먼저 자연의 압도적 힘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수도승과 자신을 겹쳐 보면서, “나는 작지만, 초월할 수 있는 의지는 충분하다.”라고 외칠 수 있다. 그림은 인간의 약함과 이성의 힘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치로 보였다.


프리드리히는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지워버리고, 단순한 구도만으로도 숭고의 감정을 전달했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지만, 동시에 그 순간 인간 정신의 초월적인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 칸트가 철학으로 설명했던 것을, 프리드리히는 그림으로 직접 경험하게 한 것이 아닐까?


결론은 둘 다 천재인 게 맞다. 그렇다. ////-/////... >_<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1774년 출생: 독일 발트해 연안 도시 그라이프스발트 (지금은 독일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1781년: 7살 때 어머니 사망

1787년: 13살 때 동생 크리스토프가 그를 구하려다 익사

1794년: 코펜하겐 왕립 미술 아카데미 입학 (덴마크에서 공부)

1798년 이후: 드레스덴에 정착, 주요 활동 무대는 독일

1818년: 결혼,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완성

1835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건강 악화

1840년: 드레스덴에서 사망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1774년 독일 발트해 연안 도시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장인이었으며, 가족은 엄격한 루터교 신앙을 따르고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연이은 상실로 점철되어 있었다. 1781년, 프리드리히가 겨우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불과 몇 년 뒤인 1787년, 13살이던 그는 얼음물에 빠졌는데 그를 구하려던 동생 크리스토프가 익사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이 충격적 사건들은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후 작품 전반에 걸쳐 죽음, 고독, 상실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불러왔다. 1794년 그는 코펜하겐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당시 덴마크 미술은 신고전주의적 규율과 철저한 드로잉 훈련을 강조했으나, 프리드리히는 점차 자연과 인간 내면의 관계, 종교적 성찰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798년부터 드레스덴에 정착하며 본격적인 화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풍경화를 단순한 경치 묘사가 아니라 인간 실존과 영적 탐구를 담아내는 철학적 장르로 격상시켰다. 1818년 발표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낭만주의 풍경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1830년대에 들어 건강이 악화되었고, 1835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창작 활동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는 1840년 드레스덴에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는 지나치게 어둡고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지만, 20세기 이후 그의 작품은 재평가되었고 오늘날에는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프리드리히의 설명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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