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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나의 어린아이 어린이에게

자몽 살구 클럽

by 료료

살구 싶다!

살구 싶다!

살구 싶다!


서점 중앙, 눈부신 조명 아래 베스트셀러들이 보였다.


자몽살구클럽.
최근 ‘여름’, ‘토마토’, ‘앵두’ 같은 제목들을 봤었다. 이번엔 자몽이냐? 살구도?


책은 가벼웠다.
그 가벼움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데?’ 그냥 느낌이 좋았다.


다음 날_ 도서관

한참 졸다가 깨어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책상에 책을 쌓아두었던 게 보였다. 그중에 두 권은 대출하고, 나머지는 반납대에 내려놓았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됐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걸음이 빨라졌다. 신간 코너를 힐끔- 자몽살구클럽이 눈에 들어왔다.


집어 들어보니, 역시나 가볍다.
아이가 고른 책을 대출하면서
내가 빌린 책들을 몇 권 반납해야 했다.


하지만 ‘자몽살구클럽’도 데려가고 싶어졌다.

마감까지 4분.

여유 있는 척했지만, 마음은 은근히 초조했다.
기계 앞에 서서 도서관 카드를 꺼냈다.

결국 모스크바 신사를 반납했다. (재미있을 거란 얘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계속 미뤄온 책.)


집으로 돌아와서.

첫째는 내일 졸업앨범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얼굴이 부울 수 있다며 기름지지 않는 두부면을 먹는다고 한다.

둘째는 아침부터 약속한 라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부면은 그냥 먹기엔 싱거울 것 같았다. 그래서 팟타이 스타일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마늘을 싫어하지만, 느끼한 맛도 좋아하지 않는 첫째를 위해 다진 마늘은 아주 소량만 넣었다. 며칠 전 처음 사본 까나리 액젓과 굴소스, 식초, 올리고당을 넣어 두부면에 가볍게 양념을 묻혔다.


따로 프라이팬에 양파 한 개를 얇게 썰어 올리고, 새우와 함께 올리브유를 두른 뒤 볶았다. 그 위에 양념한 두부면을 넣어 다시 한번 전체를 볶아내었다. 계란 세 개는 버터에 스크램블로 부드럽게 익히고, 모든 재료를 한 접시에 예쁘게 담아 주었다.


“너무 맛있어. 그런데 좀 더 짜지 않고, 매콤했으면 좋겠어.” 첫째의 평. 그릇은 깨끗이 비웠다. 식사를 마친 뒤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입맛이 까다로운 그녀라 나도 모르게 오늘은 이렇게 잘 보냈구나 하며 안심했다. (사실은 땅콩의 고소함도 없다고, 먹다가 일어나서 주방으로 직접 주방으로 가 아몬드를 꺼내 열심히 다져서 가져가심)


라면을 먹던 둘째는 몇 년 전 씌워놓은 은니가 흔들린다고 울먹였다. 당장이라도 뽑힐 것처럼 아프다며 발을 동동 굴렀고, 입 안에서는 피가 제법 나왔다. 진통제를 챙기고 돌아오니 조금은 참을 만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라면은 반도 먹지 못했고, 배가 고파 속상해하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나는 미숫가루에 꿀과 우유를 넣고, 곱게 믹서기에 갈아 한 잔을 내어주었다. 사실, 아이가 평소에 “뭉친 미숫가루가 씹혀서 먹기 불편해”라고 자주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믹서기 돌리는 게 귀찮아서 그냥 마시라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가 아프다고 하니, 내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핸드믹서로 부드럽게, 1분도 안 되어 곱게 갈아낸 미숫가루. 그걸 건네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우리의 저녁이 끝났다.


식사를 치우고 브런치를 켰다. 오랜만에 eat, read, enjoy 매거진에 글을 업로드하기로 했다. 그런데


책상 위에 있던 자몽살구클럽이 눈에 들어왔다.



슬쩍 볼까? 싶어 책장을 넘겼고, 결국 나는 또 빠져들었다. 브런치를 올려야 한다는 마음은 그 순간 어쩔 수 없다는 듯 멀어졌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가 궁금해 검색했다.


한로로의 글. 거칠고 날 것의 글은 마음을 가볍게 지나쳐버릴 것 같았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나의 취향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자몽살구클럽을 읽고

어느새 나도 40대가 되었다. 새로운 유행이 생길 때마다 ‘이건 또 뭘까?’ 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예전 같으면 스쳐 지나쳤을 것들이, 지금은 오히려 더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자몽살구클럽도 처음엔 가벼운 제목과 신조어, 비속어 섞인 문체에 요즘 스타일의 가벼운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청소년들의 고민과 감정을 다루며, 묵직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한다.(사실 맘이 너무 아파 눈물을 뚝뚝흘렸다.)


작가의 음악 앨범까지 연결된 구성은 하나의 콘텐츠처럼 느끼게 했다. 책의 형태와 전달 방식이 이렇게 달라졌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책 속에는 중학생 아이들이 나온다. 소하, 태수, 유민, 보현. 그 나이대의 고민, 감정,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들이 어쩌면 내 안 어딘가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의 말과 시선으로 세상을 판단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항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감정은 있었지만, 그걸 설명할 언어는 없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고,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 판단하려 애쓰며 더 깊은 고민에 빠지곤 했다.


어린 나이의 어린이. 그들은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여리고도 가볍지 않은 존재로 남아 있다. 내일을 버티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존재들. 부모나 보호자,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아이들에게 안정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벗어나기 힘든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감옥이 되기도 한다.


삶에 대한 질문을 소중히 여기고, 답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 그들에게 이 이야기가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이 된 우리는, 후회하고 사과하는 것이 습관이다. “애들은 뭘 몰라.” 그렇게 쉽게 내뱉었던 말에 담긴 무게를 대한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그 말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우리는 늘 뒤늦게 깨닫는다. 어린 나이의 어린이들은 사실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고, 많은 것을 두려워한다.


어른들은 흔히 ‘내가 지나온 시간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했다면 지금의 어른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어른의 아픔이 어린이의 아픔보다 더 크지도, 더 작지도 않다는 것. 그걸 아는 어른이라면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그 ‘어린 영혼’까지도 조금 더 따뜻하게 보살펴주길 바라본다.


[MV] 한로로 (HANRORO) - 시간을 달리네 (Goodbye, My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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