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는 꿈을 꾼다
첫사랑은 한 번뿐이라고들 말한다. 마치 단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사건처럼.
처음은 늘 익숙하지 않았다. 시선 하나에도 괜히 의미를 부여했다. 왜 말 한마디에 떨려오던 그 순간을 오래 머물게 했을까. 어쩌면 나는 난생처음의 남겨진 쓸쓸함에 꽂혀 있었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러 번의 첫사랑을 겪는지도 모른다.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계절 속에서, 다른 음악을 배경으로 여러 색으로 덧칠된다. 그럼에도 첫사랑은 대부분 과거형으로만 남는다. 하지만 그 감정만은 현재형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마르크 샤갈은 그 모순을 평생 끌어안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스물두 살의 어느 날에 한 소녀를 처음 만나고 인생에 제일 큰 영향을 받았다.
핑크빛 연인들 Les Amoureux en rose
샤갈은 1914년 러시아로 돌아온 뒤, 약혼녀 벨라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어 눈을 감고, 고개를 파묻는다. 포옹한 채 하나처럼 스며들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고, 다시 가을과 겨울이 반복되는 계절을 그들이 채우고 있는 듯하다.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사랑은 오히려 더 깊이 잠긴다. 짙은 장미향처럼, 그림을 보면 그 향이 퍼져온다.
김효근의 가곡 <첫사랑>에서 “내 마음이 빛이 되어 그대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가사를 들으면 샤갈의 시간 역시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평생을 벨라와의 첫 순간 속에서 빛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회색빛의 연인들 Les Amoureux en gris
1916년 봄, 딸 이다가 샤갈과 벨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사랑은 삶 속에서 조금 더 깊이 무겁게 단단해지고 있다.
초록빛 연인들 Les amoureux en vert
초록색은 몽환적이다. 그와 그녀는 꿈을 꾼다. 그들은 아마 어딘가에 떠 있지 않았을까. 안갯속을 걷어내며 그 모습을 드러내는 두 사람.
샤갈은 죽을 때까지 초록빛 연인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 그림을 샤갈 국립 미술관에서 처음 보았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작품이 놓일 공간을 직접 관여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사랑을 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게 한다. 지금의 나는 어떤 감정을 지나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는지, 아니면 언젠가의 나에게 남겨질 또 하나의 처음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김효근의 <첫사랑>의 고백처럼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난생처음의 쓸쓸함이었는지 좀 더 깊이 좀 더 얕게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