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분서 사건 현장을 가다.
베를린을 여행 중이다. 서울에 광화문 남쪽으로 남대문까지 세종로가 있다면, 베를린에는 부란텐부르크문 앞으로 박물관 섬까지 '운테르 덴 린텐' 거리가 있다. '보리수나무 아래'라는 뜻을 가진 예쁜 길이다. 그 길을 걷다가 작지만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넓은 베벨 광장 중앙 바닥에 작은 동판 둘, 그리고 그 옆에 한 변이 1m쯤 되어 보이는 정사각 유리블록 하나 깔려 있었다. 멀리서 보면 빗물 배수구처럼 보여 사람들은 그것이 있는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그 유리블록은 투명했고, 그 아래에는 뻥 뚫려 제법 큰 방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방은 비어 있고, 사각 방 벽으로 빈 책장이 세워져 있었다. 이게 뭐지? 여행안내 책자를 자세히 읽고야 그 자리가, 20세기 독일에서 일어났던 분서 사건의 장소인 줄 알았다. 2200년 전 중국 진나라에서 분서갱유가 있었는데, 1933년 이곳에서 나치 버전 분서 사건이 일어났고, 몇 년 후 1945년 전후에 히틀러 판 갱유 사건이 있었다. 그 분서 사건을 기억하고 되풀이 말자고 건축가 미하 울만이 <빈 서가>라는 기억 공간을 이 광장 밑에 설치하였다.
1933년 5월 나치의 홍위병 학생들이 ‘나치가 지정하는 불온서적'을 모아 와 이곳에서 불태웠다고 한다. 주로 마르크스, 프로이트, 룩셈부르크, 하이네 등과 같은 책 이만 여권이라고 한다. 유리판 블록 아래 빈 책장은 그 이만 권의 책이 꽂힐만한 ‘서가’라고 한다. 그 책은 태워졌으니 지금은 비어 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옆에 있는 동판에는 하이네의 희곡 <알만소르>에 나오는 글이 적혀 있다. “그것은 그저 서곡일 뿐이었다. 책을 태운 자들은 결국에는 사람도 태울 것이다.”(박종호, , <베를린> 참조) 하이네의 말처럼 히틀러는 6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불태워 죽였다.
책을 태운 자들은 결국 사람도 태울 것이다. 책을 태운 자들 뿐이겠는가? 책을 짓밟은 자는 사람을 짓밟고, 책을 깔고 앉는 자는 삶을 깔아 뭉개고, 책을 내팽개친 자들은 사람을 내팽개칠 것이다. 어찌 책뿐이겠는가? 강아지를 걷어차는 자는 사람도 걷어찰 것이고, 고양이를 집어던지는 자는 사람도 집어던질 것이다. 내 가슴이 먹먹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에게도 강아지를 걷어찬 경험이 있고, 책을 깔고 앉은 적이 있으니, 나에게도 책을 불태울 폭력성이, 사람마저 불태울 폭력성이 없다 할 수 있겠나? 다행히 나는 히틀러를 만나지 않았고, 그 비슷한 시대를 지났으나 우연히, 아주 우연히 그 누구의 홍위병 노릇은 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다.
오늘 독일 여행 첫날에 건축 <빈서가>를 보고 느낀 점이 많다. 책을 소중히 해야 한다. 냄비 받침대로 사용하지 말고, 불쏘시개로라도 사용하지 말자. 책뿐이겠는가? 그 무엇이든 필요 없다고 쓰레기 통에 쑤셔버리는 일은 하지 말자. 무슨 물건이든 소중히 사용하고 다 사용하면 엄숙히 작별 인사하고 고이 보내주자. 이건 물건에도 정신이나 귀신이 있다는 미신이 아니다. 그냥 그 무엇이든 함부로 하면 인간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베벨 광장 바닥 유리블록 안에 <빈서가>가 있다. 사진의 유리에는 하늘의 구름만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