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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Aug 10. 2024

라이프치히의 알

처음 시작하는 의미로서의 알

나는 매일 삶은 계란 한 개를 꼭 먹는다. 계란을 삶고 껍질을 벗기다 보면 계란의 성질을 알게 된다. 너무 오래 삶으면 퍽퍽해지고 너무 짧게 삶으면 껍질 벗기기가 힘들다. 적당히 삶아야 껍질을 까기 좋고, 말랑하여 먹기도 좋다. ‘장자(莊子)가 ‘기왓장 속에도 도가 있다’고 말한 뜻이 혹시 이런 건가? 계란에도 도가 있다. 삶은 계란 두 개를 부딪치면 그중 한 개가 먼저 깨진다. 두 번 세 번 부딪쳐도 처음 깨진 놈만 계속 깨진다. 날계란과 삶은 계란이 섞여 구분이 힘들 때에는 팽이 돌리듯 돌려보면 안다. 삶은 놈은 팽이처럼 도는데, 삶지 않은 계란은 뒤뚱거리며 춤춘다. 이렇듯 세상 만물에는 두루 그렇고 그런 제각각의 도가 있고, 전 우주를 아우르는 도도 있다.  

   

계란을 삶거나 까거나 먹을 때면 옛사람들의 계란(알)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불교 선사들은 “병아리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알 속의 병아리가 톡톡 신호를 보내고, 동시에 밖에서 암탉이 탁탁 쪼아주어야 한다 [줄탁동시(啐啄同時)]”고 말한다. 깨우치기 위해서는 스승과 제자의 동시적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헤르만 헤세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고 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 모두 추상적인 삶의 마땅한 길을 구체적인 알까기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근처 광장 한 언저리에서 알 조형물을 보았다. 내 몸뚱어리보다 큰 대리석 덩어리를 쪼고 다듬어 조형물로 세워두었다. 계란과 친숙한 나는 그 알을 간단히 보아 넘길 수 없었다. 만져 보았다. 여름 햇볕에 데워져 따뜻했다. 안아 보았다. 부드럽고 포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무슨 사연이 있어, 무슨 의미로 여기다 계란 조형물을 만들어 세워두었을까? 공부하는 대학 캠프퍼스에 있는 계란이니, ‘줄탁동시’라는 의미가 딱 알맞겠는데 얘들이 불교를 알기는 할까? 어쩌면 헤르만 헤세가 말한 참된 자기를 찾기 위해 꼭 깨뜨려야 할 하나의 세계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표지판에 적힌 글을 번역기를 돌려 읽어보았다. 완벽한 번역은 아니었다. 짐작컨대 라이프치히 대학의 계란은 ‘자유를 위한 투쟁의 시작’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첫 설교를 이 도시 어느 교회에서 했고, 통일 전 동독에서 자유를 위한 시위도 이 도시에서 먼저 했다고 한다. 니체가 젊었을 때 이 대학에서 문헌학을 공부하며 자유를 꿈꾸었고, 괴테도 이 도시에서 머무르면서 ‘파우스트’를 쓸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을 보유한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이를 자랑스러워하며, 그들을 묶는 하나의 상징물을 만들어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알 조형물이었다. 

    

내가 아침마다 생각하는 ‘삶은 계란에도 도가 있다’에서 계란은 제각각의 법칙성을 가지고 있는 만물을 대표한다. 불교 선사들이 말하는 알 이야기는 수행하고 깨우치는 원리를 알려주려는 비유이다. 헤르만 헤세의 알은 참된 자기 삶을 위해 끊임없이 깨뜨려야 할 자기만의 세계 상징한다. 그런데 라이프치히의 알은 ‘중요한 시작’과 ‘최초로 생겨남’을 상징함이 분명해 보인다. 여러 족속의 시조(始祖) 신화에 알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듯이 이곳 라이프치히 사람들도 자기 땅에서 참 중요한 일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표식으로 이 조형물을 세웠을 것이다. 특히 루터의 종교개혁이 그렇고, 옛 동독 학생들의 자유를 위한 시위가 그렇다. 니체나 괴테의 사유도 이곳 라이프니치에서 시작되었다고 은근히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아침마다 계란을 먹으면 ‘라이프치히의 알’도 생각날 것이다. 깨트리고 나아가야 할 알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시작하는 의미로서의 알이 있음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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