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타타타 Aug 14. 2024

유럽 교회 방문기

기행문,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체스키 크룸로프 교회 종소리가 울린다. 일요일 아침 11시다. 아내가 오늘은 호텔에서 쉬자고 했다. 여행을 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엄청 소모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나 보다. 중세 건물을 두세 채를 연결하여 개조한 호텔 구조는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복잡했지만, 교회 종소리는 높은 종탑에서 곧장 지붕을 타고 열어둔 창문을 통해 내 귀에 평화롭게만 들린다. 동네 사람들은 저 종소리를 듣고 예배당에 가겠지? 여행객들 중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또한 예배에 참석할 것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예배당 건축물을 둘러보고 뭔가를 생각하며 사진 찍고 나갈 것이다. 이참에 유럽의 교회(성당)에 대해 생각해 본다.


유럽 여행은 교회 탐방 여행이다. 우리나라 풍광 좋은 곳에 절이 자리 잡고 있듯이, 서양의 도시 주요 광장에 어김없이 교회가 있다. 칠팔 년 전 처음 유럽 여행 때 교회를 방문한 후 나는 생각했었다. ‘이제 기독교 시대는 끝났다. 교회에는 목사나 사제는커녕 기도하는 신도도 보이지 않는 빈 껍데기 교회당만 남아있다. 교회당조차 관광지로 전락하고, 일부 공간은 점포로 임대하고, 종종 공연장으로 대여한다. 예수님도, 성경 말씀도, 믿는 자들의 교제도 사라진 그야말로 형해화된 건축물만 남았다.’


이번 북부독일(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을 거쳐 칠레(프라하, 까를로비바리, 체스키크룸로프) 여행에서도 교회 탐방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색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거룩함의 에너지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성스러움이 세속화되어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세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사람들에게 삶(인생)을 묻게 한다. 여행객들은 예수, 그의 제자, 거룩하게 살다 간 성인들, 교회에 묻혀있는 위대한 자들을 통해 각자 자기 삶을 묻는다.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고 했던 예수의 말씀을 상기할 것이고,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는 과연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교회 건물에 조각된 자들은 죽은 지 오래되었고, 교회를 건축한 사람들도 죽었고, 이곳에서 기도하는 자들도 대를 이어 죽어갔지만, 그들이 스쳐 지나간 흔적은 교회당 곳곳에 새겨져 있다. 여행자들은 그 흔적에 담긴 이야기를 모른 채 그냥 사진만 찍고 가는 것 같지만,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 잘 사는 삶과 잘못 사는 삶은 분명 다르구먼!”


이번 여행에서 나는 교회에서 많이 쉬고 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기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나는 교회에서 한 참을 앉아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하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옛날 교회 다닐 때 외웠던 성경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궁극적 의미를 묻기도 한다. 옛 기독인들이 예배하던 신성한 공간이 일개 여행객의 휴식처로  쓰이는 것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 본다. ‘목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 주는 것도 사랑일진대 여행에 지친 사람들이 잠깐 쉬어가게 하는 것 또한 사랑 아닐까? 잠시 기도인지, 명상인지 구분이 안 되는 폼으로 앉아 꾸벅꾸벅 졸다 가는 여행객에게 교회는 편안한 휴식처임에 분명하다.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신자들의 신앙이 모여 이 교회당을 만들어냈고, 예배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다가, 이제는 여행객의 쉼터로 변하여 여전히 사랑을 베풀고 있다. 이런 것이 사랑의 보편화, 종교의 세속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떤 교회는 너무 잘 지어졌다. 웅장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건축학적 조화와 균형미는 문외한이 보더라도 놀랍다. 여행 중에 이런 교회를 가는 이들은 예배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다. 낯선 건축이 주는 예술적 감동을 느끼려 간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건축물의, 스테인드글라스의, 파이프 오르간의, 조각 장식물의 아름다움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이 지점에서 나는 ‘종교가 예술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여러 분과 과학에 자리를 내주었던 것 같이, 기독교는 미술, 음악, 건축 같은 예술에 자리를 내주었다. 교회 건축물은 그 자체가 건축 예술물로, 예배당은 음악 연주회장으로, 여러 미술 작품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종교의 종말은 아니다. 예술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종교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과학이 세상을 더 잘 설명한다고 해서 철학이 없어진 게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또 다른 형식의 철학을 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와 기독교는 이제 새로운 형식의 옷을 입고 또 다른 종교적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지금 교회당 종소리가 여러 겹으로 한참 울린다. 아마도 12시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일 것이다. 매시 정각에는 4번, 15분에는 1번, 30분에는 2번, 45분에는 3번 울리는 것 같았다. 지금 정각 12시는 여러 개의 종이 동시에 오랫동안 울린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신호인지, 언제나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신호인지 모르겠다. 어느 세속인은 이 소리를 듣고 점심을 챙겨 먹을 것이고, 또 다른 세속인은 아내에게 사랑의 키스를 퍼부을지도 모른다. 성스러운 것은 세속화되어도 감미롭다.   [2024,8.4(일)]


<체스키크룸로프 성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오른쪽 제일 높은 건물이 성 비투스 교회[Church of St. Vitus]다. 

작가의 이전글 하얀 천막지붕의 정체를 알려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