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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Aug 15. 2024

사람 구경

여중(旅衆)의 최고 덕목, 적절한 무관심

여남은 날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물었다. “뭐가 제일 인상 깊었어요?”  이 질문은 유치해 보이지만, 꽤 깊이 있는 질문이다. 이 대답 속에 그 사람의 가치관은 물론,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능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질문하는 자가 아내라 편안하게 대답했다. “사람! 다양한 사람의 가지각각의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좋았어. 사람구경이 최고였어.” 어떤 말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아내에게 무심결에 내뱉은 이 말은 어쩌면 진심이었는지 모른다.


마지막 일정으로 5년 전에 가본 오스트리아 빈 중심가를 방문했다. 당시의 기억이 하얀 도화지에 노란 크레파스로 그린 밑그림처럼 희미했는데, 다시 둘러보니 그때 갔던 성당, 박물관, 찻집, 공원, 대학교, 조각물들의 기억이 뚜렷해졌다. 서울 명동보다 훨씬 넓고 번화한 거리 중심에 슈테판 교회가 웅장하게 서 있다. 이번에는 교회당 안은 둘러보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다닌 교회들이 모두 엇비슷해서 하나 더 구경한들 큰 감동이 올 것 같지 않아서다. 대신 이번에는 교회당 앞마당, 광장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 제대로 한 번 해 볼 참이다. 아내를 교회당 안에 보내놓고 나는 광장 주변의 벤치에 앉았다. 


슈테판 교회 건물을 둘러싼 마당이 슈테판 광장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골목길이 뻗어있다. 동쪽으로는 도나우강으로 가는 길이, 서쪽으로는 빈 시청 가는 길이, 북쪽으로는 성삼위일체 탑이 있는 길이, 남쪽으로는 카를 교회가 있는 길이 있고, 그 사이로 작은 골목길들이 방사형으로 나 있다. 파리 개선문 중심 거리처럼 기하학적 대칭 구조로 조성된 거리가 아니라 길의 너비와 뻗어나가는 각도는 제각각이다. 덜 인위적으로 보여 정겨워 보였다. 사방팔방에서 이 교회를 향해 오고, 이 교회를 거친 사람들이 또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광장 벤치에 앉아, 나는 지금부터 사람들을 구경할 참이다.


일단 사람들이 참 많다. 한눈에 보이는 사람만 얼추 천여 명은 되어 보인다. 옛날 학생 수 2000명이 넘는 학교에 근무할 때 매주 운동장 조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규모의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느린 속도로 끊임없이 오고 간다. 사진 찍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고, 교회에서 나오고, 마차에 오르고, 기념품 가게에 들락날락하며 천천히 움직인다. 이들은 아무 목적도 없이 모인 군중도 아니고, 정치적 목적을 가진 대중도 아니며, 의식 있는 자유인들의 느슨한 모임인 다중도 아니다. 이들은 여행하는 무리, 즉 여중(旅衆)이다. 


여중(旅衆)은 다른 무리에 비해 몇 가지 특성이 있다. 표정이 밝고, 걸음이 느긋하고, 옻을 잘 입고, 무엇보다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표정이 밝은 것은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고, 행동이 느긋한 것은 오늘 안으로 여행 말고 꼭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옻을 잘 입는 이유는 여행이 특별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고, 사진을 그렇게 열심히 찍는 이유는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겠다는 무의식의 발동이리라. 가끔 이 무리 중에 바쁜 이들은 현지인이거나, 단체 관광객일 것이다. 간혹 이들 중에 옷이 허름한 이들은 구걸하는 자이거나 진짜 여행객일  것이다. 사진 찍기를 시큰둥하는 사람은 이곳에 몇 번은 왔던 사람이거나, 곧 또 올 사람일 것이다.


사람들이 참 다양하다. 성, 인종, 출신 국가, 나이, 종교, 민족 등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다양해도 서로 빤히 쳐다보는 사람 없고, 그저 저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며 자기 여행에 충실하다. 사람 구경하고 있는 나조차도 한 사람에게 오래 시선을 둘 수가 없다. 슈테판 교회당 지붕을, 기둥을, 종탑을 구경하는 척하며 짧은 순간에 사람들의 특징을 포착할 뿐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가끔 보이는 것으로 보아 노출 의상이 대세는 아닌 듯하다. 퀴어축제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입고 다니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시선이 자꾸 그리로 가는 이유는 심리학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직은 생경하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히잡을 쓴 여성이 대여섯 살짜리 아들 사진 찍어주느라 바닥에 쫙 엎드리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아들 사진의 배경에 높은 교회 종탑까지 다 넣으려고 사진기를 최대한 낮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도 봤을 테지만 저 또한 자식사랑이거니 하며, 그리 집중하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여행객의 최대 미덕은 서로에 대한 '적절한 무관심'인 것 같다. 어떤 옷을 입든, 어떤 언어로 말 하든, 누구와 팔짱을 끼고 다니든 “다 저만의 방식이겠거니” 여기고 지나간다. 나중에 각자 집에 가서는 가족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품평할지언정, 일단 여기서는 무심하게 흘려버릴 뿐 간섭하거나 이상한 눈치를 보내지 않는다. 나는 이런 다양함을 적절한 무관심으로 인정해 주는 여중(旅衆) 속에 있을 때 마음이 참 편안하다.              2024.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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