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납작 봉숭아를 비싸게 산 이유는?
프라하 여행 이튿날, 걸어서 구시가를 걸으면서 전반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참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 너른 인도 가운데에 가설 시장이 열려 있었다. 각종 공예품, 기념품 가게들이 대부분이고 과일을 파는 곳도 두세 군데 있었다. 아내는 과일 가게에서 납작 복숭아를 사려고 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와 별로 당기지는 않았지만, 이틀 전 독일에서 한 봉지를 사서 먹고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 말리지는 않았다.
복숭아 바구니에 가격 표시가 되어 있긴 한데, 체코 코루나로 표시되어 있어 빨리 계산이 안 된다. 독일에서는 한 봉지에 1.2유로 정도 주고 샀는데, 여기서는 큰 바구니에 막 담아놓고 원하는 만큼 봉지에 담아 팔았다. 그 정도 가격이겠거니 하고 여섯 개를 봉지에 담아 계산하려는데, 저울에 달아 무게 단위로 가격을 책정했다. 5.2유로를 달랜다. 깜짝 놀랐다. 독일보다 물가가 싸다고 들었는데, 이게 뭐야. 물렸으면 싶었는데 봉지에 놓고 미안해서 그런지 아내는 값을 지불하고, 나에게 길가 수돗물에서 복숭아를 씻어 오라고 했다. 씻으면서 사기당한 기분이라 화가 치밀었다. '저 비싼 거를 사다니!'
“여보 이거 하나 먹어봐요” 아내는 복숭아 하나를 꺼내 나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아니야, 지금 생각 없어”라며 거절했다. 잠시 후 “그래도 하나 먹어봐요” 또 권유했지만, 나는 다시 거절했다. “됐어, 먹고 싶지 않아” 아내는 두 개를 연달아 먹고 네 개는 봉지에 싸 가방에 넣었다. 시장을 벗어나 큰 광장이 나올 때까지 아내가 미웠다. '그렇게 절약하던 사람이 저 비싼 복숭아를 사다니.'
광장 저쪽 끝에 궁 같은 건물이 웅장하게 서있다. 지금은 국립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궁이다. 입장권을 끊고 방방 층층을 다 관람했다. 사진은 주로 아내가 찍는데 여기서는 나도 여러 장 셔터를 누른다. 두어 시간이 금방 갔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해서 박물관 안쪽 중앙 계단에 걸터앉았다. 지킴이가 앉지 말라 했다. 박물관을 나왔다. 현관문 밖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런 사람들이 나뿐만은 아니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진다. 당 떨어진 느낌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 아내는 가방 안에서 봉지를 꺼낸다. 아까 그 납작 복숭아다. 손이 저절로 뻗쳤다. 껍질 째 먹었다. 납작 복숭아 육즙이 참 달았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쳐다 보건 말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도 여행객답게 무관심해 주었다. 아내도 여행객 행세를 한다. 내가 잘 먹던 못 먹던 저쪽에서 광장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는다. 나는 사진 찍는 아내를 카메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