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감성의 무대에서 춤추게 하라
학교에도 축제의 계절이 왔다. 학교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어디나 장기 자랑 공연 마당이다. 첫 무대는 언제나 밴드부가 포문을 연다. 출연자는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끼를 발산한다. 관객들은 제가 노래하는 것도 아닌데 손을 들고 몸을 흔들며 환호한다. 밴드부는 무대 위에서, 관객은 무대 아래에서 각자의 몸에서 나오는 리듬을 타고 서로 호응한다. 공감, 호응, 몰입, 자유, 이것이 축제이다.
두 번째 보컬로 나온 여자아이의 노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너무 멀어 얼굴이 확인은 안 되지만 노래하는 소리와 리듬에 맞춘 몸 움직임만 봐도 고수다. 음악을 잘 모르는, 그래서 호응을 잘 못하는 내가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구경하고 있던 박 선생이 그 아이가 철학과 진학을 꿈꾸는 3학년 학생 아무개라고 귀띔해주었다. “아니, 걔가 걔라고요?” 수업 중 그렇게 얌전하고 자주 엎드려 있던, 몇 과목 공부는 포기한 듯한, 그렇지만 발표를 시키면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 깜짝 놀라게 했던, 작년에 내가 가르쳤고 올해도 내 수업을 듣고 있는 그 아이가 밴드부에서 보컬을 저렇게 훌륭하게 소화하다니! 나의 사유 세계에 훅 들어오게 되었다. 두 가지 질문거리를 가지고 그 아이를 만났다.
왜 철학과로 진학하려 하는가? “저는 모태 기독인이었어요. 지금은 교회를 안 다니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자신의 이성으로 설명이 안 되는 기독교의 교리를 발견하게 되었죠. 부모님도, 목사님도,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혹, 철학이라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철학과로 진로 방향을 잡았어요. 철학 공부하면서 다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지도 않을까 기대해요. 철학도 대답하지 못하는 게 있을 테니까요?” 음, 그렇고말고. 철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너는 아마 최고의 철학자가 되어 있을 거다. 너의 하나님도 깨닫게 될 거고. 진로 잘 잡은 것 같네.
밴드부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있는가? 혹 철학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교회 다닐 때 성가대를 했었어요.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다루면서 음악과 친근해졌죠. 밴드부에서 교회 음악이 아닌 음악을 체험하고 싶었어요.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닌, 그냥 제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철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나중에 생각이 쌓이면 관련지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단순히 노래하고 싶어요.” 네 얘기 들으니、엘리아데가 쓴 <성과 속>이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는구나. 내가 그 책을 잘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교회 음악이 성스러운 음악이라면 대중가요는 세속의 음악일 텐데, 아주 성숙한 사람이라면 세속적인 음악 속에서도 성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나는 네가 노래하는 게 참 보기 좋아.
나는 이 아이가 철학과에 가서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분과 과학에 자리를 다 뺏기고 겨우 명맥만 남아 있는 우리 시대의 철학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철학 공부를 하려는 이 적고, 돈이 안 된다고 있던 철학과조차 문 닫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가 철학과에 가서 성공했으면 좋겠다. 15년 전에 철학과로 입학했다가 일 년도 안 되어 다시 입시 시험을 거쳐 공대로 진학한 신철용(가명)의 길도 괜찮지만, 5년 전에 철학과로 진학했다가 연락이 끊긴 성철경(가명)도 제 나름의 길을 가고 있겠지만, 이 친구만은 끝까지 철학계에서 지평을 열기 바란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냉철한 사유의 학문이다, 생각에 지쳐 미쳐버릴 수도 있다. 노래를 부르고 드럼을 치는 사람은 절대 미치지 않는다. 생각이 정지되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쌓인 그림자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축제의 보컬 소녀가 철학을 하면 잘할 것 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가운 이성을 끊임없이 사용해도 따뜻한 노래 감성이 데워 줄 것이다. 어렵고 복잡한 사유의 세계를 떠돌다가도 드럼이 있는 공간에서 머물 수 있다. 감성의 뒷받침 없는 이성의 활동은 위험하다. 보컬 소녀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이성이 감성의 무대에서 춤추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