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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Oct 02. 2024

왜 대학을 안 가려고 하니?

선생님은 왜 그만두지 않으세요?

우연히 나의 퇴근길과 학생 S의 하굣길이 겹쳐 S와 얘기할 기회를 얻었다. 수업 중 S가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이후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터였다. 겹치는 길은 하천 둑길을 따라 30여 분 걸은 후 다리를 건너서 첫 번째 버스 정류소까지였다. 처음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S~!, 요즘 어떻게 지내니? 

“편안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내요.”

혹시, 하고 싶은 게 그림이니? 

“네, 음악도 듣고,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려요.”

노래는 일본 노래겠지? 

“그렇죠. 그냥 좋더라고요. 한 20여 곡 부를 수 있어요.”

일본과 관련된 것들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 

“초등학생 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참 흥미를 느끼고, 중학생 때 덕후가 되었고, 이제는 덕후를 넘어 제 삶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S는 대학교를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진짜 삶 아니겠냐고 했다. S는 내 질문에 짧게 대답하고는 다음 질문이 나오기까지 짧은 틈에도 일본 노래를 흥얼거린다.  S는 10초 이상 말없이 지내는 틈을 어색해한다. 그 틈을 줄이기 위해 나는 질문을 빠르게 만들어 낸다. 


대학 안 간다고 하니 부모님은 뭐라 하셔?

“상관없다고 해요.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대학 안 가는 건 좋은데, 뭘 하고 싶은데?

“전 저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작가를 꿈꾸는구나! 너만의 삶이 있어야 너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대학을 안 가려는 것이고요. 그런데 저는 저의 이야기나, 우리 주변의 이야기는 쓰지 않을 거예요. 요즘 작가들은 결국 자기 이야기를 쓰던데, 저는 현실의 인물을 살짝 변경하는 그런 얘기 말고,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거예요.”

혹시, 판타지 소설?

“그렇게 규정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현실의 공간은 빌릴 수 있어요. 하지만 인물과 사건은 완전히 새롭게 창작할 거거든요. 그래야 나만의 작품이 되죠.”

그러려면 책도 많이 읽어야겠다. 이야기를 건축하려면 많은 재료가 필요할 거거든. 학교 교과 수업도 모두 네 글쓰기 재료가 될 수 있고 ….

“물론이죠. 저는 제가 읽고 싶은 책만 읽고, 듣고 싶은 과목만 들어요. 선생님 과목 시간에 맨날 졸아서 미안하긴 하지만요. 선생님이 싫다기보다는 윤리라는 교과목이 싫어요. 세상일을 너무 옳고 그름 두 가지 잣대로만 나누는 것 같아요.”

혹시 너 니체 책 읽었니?

“아뇨, 제가 듣는 일본 노래와 일본 영화 속 이야기들에서 들었던 거예요.”
 

S는 자기만의 세계를 찾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이점이 독특했고 보기 좋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잘 섞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으려고 무언가에 더욱 몰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몰입의 대상이 일본 애니메이션과 그림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은, ‘홀로 있음의 불편함’을 ‘홀로 있음의 영광’으로 바꿔보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S의 대답을 신선하게 느끼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때 갑자기 S가 질문해 왔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왜 학교를 그만두지 않으세요?”

혹시, 이 질문 혹시 일본 노래 가사에 있니? 아니면 매니메이션 영화 대사 중에 나오니?

“그대로는 아니지만, 비슷한 질문들이 나오긴 하죠”

내가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네가 지금 당장 학교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와 같아.

“저는 그만둔 거나 마찬가지예요. 대학도 안 가잖아요.”

대학은 안 가겠다고 결단을 내렸지만,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하려고 아직도 학교 다니고 있잖니”

“제가 드리는 말씀은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의미 없는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용기 있는 행동이지만, 지혜로운 일은 아닌 듯하다. '의미 없는 일'이 정말 의미 없는지 따져봐야겠고, 좋아하는 일을 위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거든. 대학은 안 가지만 고등학교는 졸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듯이. 

    

S와 헤어지고 일주일 간 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왜 학교를 그만두지 않으세요?'

이 질문을 받자마자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꼬치꼬치 따져 물으며 자기 삶에 끼어들려고 하는 나에게 반격하는 질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마치 내가 지금 당장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은데, 머뭇거리며 남아 있냐고 묻는 듯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나의 모습이 S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짓거리로 보였나 싶기도 했다. 명예퇴직과 정년퇴직을 저울질하고 있는 나의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기도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실존적 질문이다. 그 대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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