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22코스 행각록
직장 동료들과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행운을 얻었다. 유독 지리산 둘레길 22구간을 좋아하는 동료가 추진한 걷는 모임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지리산 둘레길을 한 번 완주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였다. 서울서 지리산 근처까지 300여 km를 달려가서 또 295km라는 둘레길을 걸어서 완주한다는 게 부담되었던 게다. 이번 행각이 즉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오랜 염원의 결실인 셈이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이런 새벽에 용산에서 고속 열차로 남원을 향했다. 기차 안에서 해돋이를 보고, 그 해가 다시 안갯속으로 숨었을 때 남원역에 도착했다. 지리산 둘레길 기점이자 종점인 주천까지 가는 택시 기사에게서 쇠락해 가는 남원 이야기를 들었다. “남원의 인구는 한때 17만 명이 넘었으나 지금은 고작 7만 명 정도다. 매 4일과 9일에 5일 장이 서지만 사람이 없다. 도로는 임도, 국도, 산업도로, 고속 국도, 철도 등 넘치도록 깔려 있으나 다니는 차는 없고, 있던 사람들조차 그 길로 서울로 다 빨려 들어간다.” 남원시의 쇠락 이야기가 암울하게 들렸던 것과는 달리 택시 기사는 친절했고 목소리는 차분하고 기운찼다. 당분간 남원의 쇠락은 계속되겠지만 몰락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둘레길 지원센터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둘레길을 들어서기까지 주천마을을 지나는 동안 사람을 딱 두 명 보았다. 마당에서 농기구를 비닐로 덮고 있는 60대 남성과 텅 빈 거리에서 빈 수레를 끌고 가는 70대 여성 한 분이다. 다행히 우리를 향해 짖는 개를 보고는 그 집에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반가웠다. 사람도 개도 없는 집 텃밭에서도 콩이며, 들깨며, 호박들이 익고 있어 이 또한 사람 사는 흔적이라 반가웠다. 동네가 끝나고 둘레길에 접어들었을 무렵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오늘 둘레길에서 몇 사람이나 만날까요?” 우리 팀 대장이 대답해 주었다, “주민들 빼고 한 5명? 지난 두 번 걸을 때도 그 정도였거든요.” 6시간 걷는 동안 5명이라! 자연을 걸으러 왔건만 나는 왜 이리 벌써 사람이 그리운가?
자연은 언제 보아도, 언제 걸어도 좋다. 더구나 지리산이 주는 묵직한 기운까지 더해지니 걷는 맛이 색다르다. 20대 중반에 천왕봉을 처음 오르고는 그 감동을 잊지 못해 10여 년간 지리산을 해마다 오른 적이 있다. 당시에는 ‘한 계단 오를 힘조차 없을 때까지 해마다 지리산을 방문하리라’ 다짐했었는데, 생활인의 굴레에 빠지면서 중단된 지 이십 년이 넘었다. 이제 비록 둘레길의 22분의 1을 막 걷기 시작했지만, 그때 걸었던 그 느낌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지금 우리는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위엄 있으면서도 포근한 지리산 치맛자락 끈 단을 따라 걷고 있다. 지맥으로 따지면 백두대간의 정기가 흐르는, 근현대 역사로 보면 저항의 정신이 서린, 행정 지리로 보면 영호남 3도 5개 시군을 이어주는 길을 걷고 있다.
22코스는 지리산 서쪽 면에서 남북으로 굽이쳐 있다. 우리는 북에서 남쪽으로 걷고 있고, 해는 오전에는 왼쪽 뺨을, 오후에는 오른쪽 뺨을 비출 것이다. 점심은 22코스를 절반으로 나누는 ‘밤재’라는 곳에서 먹을 예정이다. 밤재까지 가는 도중에 산에서 딱 한 사람을 보았다. 만난 것이 아니라 그냥 보았다. 임도 곁에 차를 세워두고 길에서 숲으로 여남은 걸음 들어가 뭔가를 캐고 있는 노인 한 명 보았다. 중간에 지리산 유스호스텔이 있어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들어갔다가 볼일을 보고 나올 때까지도 직원 한 명 만나지 않았다. 왠지 스산한 느낌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나그네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휴일임에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스산함은 호젓함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밤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한 무리의 등반객을 만났다. 그들은 다섯 명이었고 캠핑카 옆에서 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산림 도로를 따라 반대쪽에서 넘어온 모양이다. 3 시간 만에 만나는 사람이라 인사가 저절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그들도 반가웠나 보다. “안녕하세요? 이리 오세요. 술 한 잔 드시죠?” 반가운 사람이 건네는 술은 거절하기 힘들다. 그들 중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분이 술 자랑을 하신다. “이 술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직접 캔 더덕으로 담은 술인데요, 얼마나 큰 더덕이었던지 우리 다섯 명이 나눠 술 담았다니까요.” 마셔보았더니 과연 향기가 진했다. 우리도 뭔가로 보답하고 싶었다. 다행히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이 땅콩 좀 드세요.” 하며 껍질째 삶은 땅콩 한 봉지를 내놓는다. 우리가 땅콩을 내놓으니, 그들은 또 커피를 내놓는다. 이렇게 그들과의 대화는 계속되었고 그들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았다.
그들 중 네 명은 백두대간, 백두정맥, 코리아 둘레길을 이미 완주하고 최근에 백두지맥을 걷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걷는 지리산 둘레길 22코스와 그들의 걷는 지맥길이 겹치는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한 명은 캠핑카를 몰며 주요 지점에서 음식을 공급해 주고 짐을 옮겨주는 봉사자라고 한다. 오랫동안 산행을 함께했던 팀원이라 번갈아 가며 봉사한다고 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산야가 참 아름답다고 했다. 외국의 그 어떤 산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특히 산 중에서는 지리산이, 길 중에서는 남파랑길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좋다고 거듭 권했다. 나이 많으신 분은 초등 교장 출신인데 나이가 일흔셋이었다. 나보다 12살 위인데 더 건강해 보여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가 환갑 지나서라고 했다. 뇌리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난 팔월에 환갑을 지났다. “나도 시작해도 되겠구나! 한반도 둘레길을 걷자.”
그들과 헤어지고 난 다음 길은 한결 가벼웠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얻은 필연적 희망은 마치 월척을 낚은 느낌이었다. 더욱이 오후 둘레길의 예쁜 풍광은 금상첨화였다, 왼쪽 11시 방향으로 멀리 지리산 노고단을 보며 걷는 길이다. 중간에 편백 나무숲, 소나무 숲을 통과하면서 수직으로 쭉쭉 뻗은 숲 속 경관의 일부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밤나무, 감나무, 산수유 과수원길을 지나며 떨어진 열매를 줍는 흡족함도 만끽할 수 있었다. 종착지인 산동 마을 도착할 무렵 아침에 탔던 택시를 불렀다. 기사님은 아침보다 더 기분이 좋아 남원 이야기를 쏟아냈다. 남원 최고 추어탕집이 바뀐 사연과 남원역 근처 커피숍 커피 맛 품평은 참고할만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잠을 청했으나 잠 대신 밝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지리산! 과연 선하고 정의로운 기운이 강한 산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다시 일깨워져 참 다행이다. 처가댁 산청이나 나의 고향 진주에 갈 일이 있으면, 지리산 둘레길은 일부라도 걸어 끝내 한 바퀴 다 돌자고 마음먹었다. 기운이 좋은 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일은 더 큰 행운이다. 그들에게서 제2의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한 항목을 얻었다. 정년 이후에까지 미룰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이런 밝은 생각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도 느껴졌다. 내 몸이 견뎌줄까? 둘레길 근처 지방 도시는 살아남을까? 지혜가 필요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