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 4코스
한반도 둘레길은 우리나라 땅 바깥으로, 바깥으로 나야 정상인데, 그 일부인 DMZ 평화의 길 4, 5코스는 한강을 타고 안쪽으로 한참 들어와 일산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넌 후 다시 바깥으로 향한다. 아주 좁고 길게 홈 파인 ‘⊐’ 자 모양이다. 4코스는 김포 전류리 포구에서 시작하여 한강을 따라 걷다가 일산대교로 한강을 건너 고양 종합 운동장까지 가는 길이다. 길의 생김새에 따라 이 길의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일산대교가 된다. ‘⊐’ 모양의 가운데 획에 해당하고, 이 길에서 가장 큰 인공 구조물이며, 무엇보다 이 다리가 갖는 인문지리적 의미가 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북 분단 상황이 아니면, 한반도 둘레길 4, 5코스는 ‘⊐’ 자 모양으로 훅 파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강화도에서 바로 북쪽으로 길이 나거나, 최소한 한강 하류 끄트머리에서 파주 쪽으로 다리를 놓아 건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분단 상태이고, 그것도 대치 상태에 있기에 한강 최하류의 다리는 지금의 일산대교이다. 더 하류 쪽에 ‘수도권 제2 순환도로[400번 도로]’가 관통한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 아래 터널로 공사 중이라 개통되어도 걸어서 건널 수 없다. 400번 도로 한강 다리를 건설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국방부에서는 안보 문제로, 환경부에서는 조류 생태 보호 문제로 반대해 하저 터널로 건설 중이라 했다.
전류리 포구를 출발하여 두 시간 넘게 걸으면 ‘김포한강 조류 생태 공원’을 지나 일산대교 남단에 도착한다. 90°로 꺾어 일산대교를 진입하면 절반은 온 거다. 일산대교는 유료 도로다. 민간 자본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걷는 사람에게는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다리 위 인도는 쓰레기로 지저분하다. 다리 모양도 너무 밋밋하다. 미적 감각을 내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듯했다. 그냥 값싸게 건설하여 통행료 받아서 빨리 본전 찾자는 논리만 보였다. 그나마 다리 한가운데 교각 보 두 개가 아치형으로 만들었으나 그조차 게으른 설계자의 하품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산대교가 가진 최하류의 의미가 이렇게 읽히면 안 된다.
걷는 자는 추함도 잠시 느끼고 말뿐, 곧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다리 위에서 한강 하류를 통해 서북쪽으로 바라보는 재미는 색다르다. 한강 남쪽으로는 김포 너른 들판에 신도시 아파트가 조밀하게 서 있지만, 아직도 녹지가 더 많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이 2코스에 있는 문수산이다. 한강 북쪽으로는 일산의 고봉산과 파주의 심학산이 보인다. 심학산은 4코스 출발지에서부터 다리 위에서까지 계속 보이는 명산이다. 심학산 이야기는 5코스에서 다루고자 한다. 뭐니 해도 압권은 뻥 뚫린 한강이다. 일산대교 한가운데서 한강을 보면 왜 한강이 한강인 줄 안다. 그냥, 참 큰 강이다.
아쉽게도 바다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전류리포구 근처에서 한강이 더욱 북쪽으로 꺾여 흐르기 때문이다. 전류리를 한자 뜻으로 보면 '흐름을 바꾼다'라는 뜻이다. 바다에 가까워 민물과 썰물에 따라 강물의 흐름이 바뀌는 지리적 특성을 살린 이름이다. 내가 보기에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완전히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흐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물이 맑지는 않지만 더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진흙 가루가 구름처럼 계속 피어오르고 가라앉으니 흐려 보일 뿐이다. 강바닥이 뻘밭인 것 같다. 강 깊이는 썰물 때라 그런지 얕아 보였다. 강 가운데에는 모래톱이 조그맣게 형성되어 있었다. 남북이 통일되면 저 모래를 채취하여 이용하자는 쪽과 환경을 이유로 반대하는 쪽의 논쟁이 있겠지만 승자는 정해져 있다. 일산대교 남단과 북단 하류 쪽으로 넓고 길게 보존되고 있는 ‘생태 보고(寶庫)’ 때문이다.
남단의 ‘김포한강 야생조류 생태 공원’은 보기 드문 걸작이다. 원래 김포의 많은 땅이 한강 습지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둑을 막아 평야를 만들고, 그러고도 남은 습지를 최근 신도시를 건설할 때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이 산책하고 조류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비록 절반은 철책으로 가로막힌 한강 부지에 있지만 나머지 절반만으로도 꽤 넓은 공원이다. 습지, 낮고 높은 산책길, 자전거 길, 곧 숲이 될 작은 나무들이 잘 어울려 있다. 가까운 주택 단지는 살아볼 만한 동네로 보였다.
북단의 ‘갈대밭’은 압권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갈대 군락이 시야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겨울에 말라 누렇고 뻣뻣한데도 갈대는 여전히 부드러우면서 위엄 있었다. 누런색은 황금빛으로, 뻣뻣함은 무사의 절도로 느껴졌다. 바람에 함께 흔들리는 갈대 춤은 한 편의 군무였다. 저 갈대밭에서 살아갈 새들과 습지 생명들을 생각해 본다. 저 갈대 습지가 정화해 낼 깨끗한 물을 생각해 본다. 또 한 번 개발의 시대가 와서 한강 하구의 모래가 아무리 요긴하다 해도, 우리는 그 채취를 용인할 수 없다. 일산대교 남단에 있는 생태 공원과 북단에 있는 갈대밭이 지켜줄 것이다. 이 둘을 이어주는 일산대교는 개발의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다.
하이데거가 하이델베르크 다리를 두고 “이 다리는 강 옆의 두 언덕을 단순히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별개로 존재하던 두 언덕을 비로소 '강의 언덕'으로 출현하게 한다.(박찬국,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210쪽)”라고 했듯이 일산대교는 단순히 김포시와 고양시를 이어주는 다리가 아니다. 별개로 존재하던 김포의 생태 공원과 고양의 갈대밭을 연결하여 비로소 '한강의 생태 공원'이 되게 했다.
일산대교 다리 위에서 고양시 쪽 갈대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