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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Oct 07. 2020

부를 쌓는 프로세스


이 세상의 진리는 불확실성이다. 불확실한 진리라는 아이러니한 개념을 인정해야 한다. 수천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이 이 세상의 진리에 대한 물음을 던졌고 자신만의 정답을 내놓았다. 그 갑론을박 끝에 결론은 불확실성이다. 이 긴 물음의 역사 끝에 서있는 지금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경제학자가 내놓은 결론이다. 불확실성이라는 키워드로 그들의 결론을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걸 잘 인정하지 않는다. 진리는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주관대로 삶을 산다. 객관적인 이론이라고 불리는 것도 허상이다. 맑스주의자에게는 이 세상이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눠져 있다. 페미니스트에게 이 세상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져 있다. 세대주의자에게는 기성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로 이 세상이 나눠져 있다. 페미니스트가 보기에 맑스주의자가 말하는 노동자도 기득권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남성이 장악하기 때문이다. 세대주의자가 보기에 노동자든 여성이든 나이 먹은 기성세대들이 기득권이다. 객관적이라는 수식어로 이론을 진리화 하지만 그건 단지 이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프레임일 뿐이다.


대부분의 이론가는 일종의 소설가다. 이론가는 자신의 이론을 통해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공간을 구축한다. 이 가상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고 이 가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임계점을 넘어 주관에서 객관의 영역으로 인식된다. 그 이론이 만든 가상공간이 정말 객관적 진리를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접속자 수가 객관으로 만든다. 그렇게 동조자들이 많아지면 그게 부의 창출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꽤 많은 맑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의 이론을 팔아 강남에 건물을 샀다. 마르크스 이론이라는 가상공간은 재밌어서 추종자가 많다. 마르크스는 돈이 된다. 또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을 팔아 강남에 건물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각 종교마다 신이 있다. 그들도 신이라는 가상공간을 구축하여 부를 쌓고 있다.


이 세상의 진리가 불확실성이라는 키워드로 종결이 되고 나서부터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을 구축하는 싸움이 주 관전 포인트다. 그럴싸한 허상과 신기루를 누가 더 잘 만드냐의 차이다. 어차피 확실한 건 없다. 그렇다면 포인트는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 믿게 만드는 거다. 그게 오답이라고 해도 정답이라고 믿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는 가끔 "그 말도 일리가 있네."라는 말을 한다. '일리'는 정답일 수 있는 하나의 의견일 뿐 진리는 아니다. 정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답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게 '일리'다. '일리'를 진리화 한다고 사기 친다고 할 수 없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일리'는 정답과 오답 사이에 애매 모하게 걸쳐있다.  


지금 사회가 부를 쌓기 위해 요구하는 능력은 일리를 진리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불확실한 시대에 부를 쌓는 프로세스는 단순하다. 첫째, 나만의 일리를 가상 공간화한다. 둘째, 가상공간의 접속자를 만들어 동조자를 키운다. 셋째. 가상공간을 자본 시스템과 결탁시킨다. 진리가 없는 시대에는 일리가 판을 치고 그것이 곧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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