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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Sep 28. 2020

착해질 수 있는 조건

이 세상이 선과 악으로 구분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약함과 강함이다. 호랑이는 악해서 사슴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잡아먹는 거다. 사슴은 선해서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는 게 아니라 약해서 잡아 먹히는 거다. 사람들은 이 본질을 왜곡하여 약함을 선함으로 강함을 악함으로 인식한다.     


이 세상이 말하는 윤리는 약자의 테마가 아니라 강자의 테마다. 약자는 남을 해칠 강인함이 없기 때문에 선악의 결정권이 없다. 하지만 강자는 남을 해칠 강인함이 있기 때문에 선악의 경계에서 고뇌한다. 지금 당장 저 사슴을 잡아먹을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어린 새끼를 밴 사슴이 가여워 놓아준다면 그것이 선함이다. 하지만 지금 내 이빨이 다 빠져 사냥할 수 없어 놓아준다면 그건 선도 악도 아니다. 강자만이 선악의 경계에서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권이 강하다는 증거다.   


이 세상의 논리는 악하기 때문에 강한 게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악하고 선할 수 있다. 만약 악해서 강하고 선해서 약하다고 반대로 해석하면 세상을 클리어하게 보지 못한다. 


당신이 착해지고 싶다면 강해져야 한다. 약해서 착해 보이는 건 착한 게 아니다. 그저 약한 거다. 거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자의 선함이 진짜 착함이다. 거기에는 선과 악이라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착함만이 진짜 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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