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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Oct 19. 2020

미니멀한 삶


우리집은 꽤 깔끔한 편이다. 사실 깔끔할 수 밖에 없는 게 물건 자체가 많이 없어서다. 정리하는 걸 귀찮아 하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놔두려고 한다. 와이프랑 결혼하면서 이 부분을 얘기했다. 난 많은 물건을 들이는 걸 싫어하지만 와이프는 이것저것 인테리어를 하고 싶어했다. 내가 생각해도 와이프는 다른 여자에 비해서 화려한 스타일이라기 보다 수수한 편이다. 하지만 나와 비교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과했다. 


난 자취할 때 화장실 슬리퍼도 사용하지 않았다. 와이프에게 "왜 화장실 슬리퍼를 사?" 라고 물으니까 아연실색하며 "당연히 사야 하는 거 아냐?"라고 반문했다. 와이프가 거실에 카페트를 깔자고 하면 난 "굳이? 먼지 끼는 데 그냥 맨 바닥이 청소하기 좋지 않아?" 라고 하면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 봤다. 와이프가 거실에 커튼을 달자고 하면 "먼지 날리는 데 왠 커튼? 커튼 달면 답답해 보이지 않을까?" 이런 류의 실랑이는 늘 있었는 데 와이프도 나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나도 와이프를 이해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기로 했다. 그 합의의 원칙은 이거다. 기능을 주는 물건은 사도 되지만 데코레이션 류의 인테리어 소품은 사지 않는거다. 예를 들어, 커튼은 좋지만 커튼을 꾸미는 레이스 같은 소품은 사지 않는 거다.


그런데 우리집에서 다른 집에서 비해서 과하다 싶은 정도로 많은 물건이 딱 하나 있다. 그건 의자다. 의자의 종류만 해도 서재의자, 식탁의자, 쇼파, 캠핑의자, 흔들의자, 등받이 없는 의자 등 많은 종류의 의자가 있다. 단둘이 사는 집에 왜 이렇게 많은 의자가 필요한거야? 라고 해도 어느순간 와이프는 캠핑의자를 주문해서 베란다에 인조잔디를 깔고 의자를 설치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밖에 나가기 힘든 지금, 그 공간은 우리의 유일한 힐링 스팟이 되기는 했다. 의자가 많다는 건 휴식을 중요시 여기는 와이프와 나를 드러내는 물건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어쨌든 이런 실랑이를 거쳤음에도 우리의 집은 다른 집에 비해서 꽤 휑하다. 난 휑한 집을 보면서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뿌듯함을 느낀다. '난 이렇게 휑해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잘 살고 있구나.', '휑하니까 공간이 투명하게 잘 드러나서 더 아름다운걸.' 그리고 '청소도 조금만 하면 청소한 티가 팍팍나서 좋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수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 휑함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면 휑함은 나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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