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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Mar 22. 2022

불행은 권력이다

내가 28살 때 대학동기를 통해 어쩌다가 알게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의 논문 주제에 대해 피드백을 준 걸 계기로 같이 밥을 먹었다.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자 여자는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부터 시작한 불행을 적나라게 말했다. 난 술을 안 먹기 때문에 맨정신에 그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곤욕이었다. 처음에는 이 여자가 왜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걸까 라는 생각 했다. 난 도저히 그 여자가 말하는 중에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이제 그만 일어나봐야 하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했다면 아마 난 공감능력 제로의 소시오패스가 될 거기 뻔하기 때문이다. 난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하품을 속으로 삼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술집 직원이 이제 문닫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밤새도록 자신의 불행사를 말했을 것이다.


불행은 권력이다. 그 여자가 자신의 불행사를 말할 때는 나는 이제 그런 칙칙한 이야기 그만하고 일어나죠 라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꺼내어 드러내는 여자에게 그런 매정한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불행을 이용해서 타인을 지배하려고 한다.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일 수록 자신의 불행을 권력화한다. 이성에게 구애할 때 최후의 수단은 자신의 불우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을 거절한다는 것 자체에 죄책감과 죄의식을 들게 만들어 자신을 동정하게 한다. 남녀를 떠나 이런 방법은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다.


불행한 사람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는 꼭 불행배틀이 시작된다. 내가 더 불행하니 너가 더 불행하니로 싸운다. 불행하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처럼 자신의 불행을 영혼까지 끌어와서 싸운다. 이 술자리에서 내가 최고로 불행한 인간이 되야 한다고 아득바득 싸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최고로 불행한 인간이 되는 것에서 오는 안정감이라는 게 있는 듯하다. 과거의 불행에게 지금의 처지를 떠넘기면 지금이 편해진다. '과거가 불행했기 때문에 지금 이 처지는 어쩔 수 없지' 로 정신승리 한다.


불행을 권력화하면 그 불행은 실제 불행보다 더 과장되고 점점 커져서 자신을 잡아 먹는다. 그리고 그것에 맛들리면 삶은 플러스 극으로 뻗기 보다 마이너스 극으로 거침없이 치닫는다. 어느 순간이 되면 불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불행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지만 거기에 종속된다면 삶은 끝없는 악순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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