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레시피
"좋아하는 브랜드가 뭐예요?" 면접 때 다른 질문에는 잘 대답했지만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마케터라는 일을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죠. 혹시 몰라 주변 동료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약 5:5 비율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말했고 나머지는 딱히 없다고 답했습니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죠. 이 질문의 본질은 브랜드를 통해 저희 취향을 묻는 거였습니다. 즉, 좋아하는 브랜드를 통해서 제 취향을 알고 싶었던 것이죠. 물론, 마켓에 관한 저의 관심사와 깊이도 알고 싶었던 것도 있었겠죠. 브랜드 = 취향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면 마케터에게 취향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나에게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취향은 감성의 영역이라서 왜 그것이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성과 이성은 마치 서로 호환이 불가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가 왜 이것을 좋아하는지 그 마법의 열쇠를 찾는 것만큼 짜릿한 일은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나를 설명하는, 나를 알 수 있는 열쇠니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소개서를 쓰기 힘들어하는 한 독자에게 이렇게 답장을 해 준 적 있습니다.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입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에 관해 쓰라고 하면, 시험 삼아 굴튀김에 관해 써보십시오. 물론 굴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민스 커틀릿이든 새우 크로켓이든 상관없습니다. 도요타 코롤라든 아오야마 거리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든 뭐든 좋습니다. 내가 굴튀김을 좋아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잡문집 中 -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깊게 분석하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조언은 일리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나를 설명하는 상징이자 정체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저처럼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건조하게 살아갈 뿐이죠. 분명, 여러분들에게 취향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취향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보거나 경험했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때마다 기록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기분이 우울할 때마다 그걸 꺼내 보며 기분을 리프레시할 수 있으니까요. 행복에도 레시피가 있다면 여러분의 취향이 주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취향을 흘러 보내기보다 앞으로 수집하며 살아간다면 조금 더 삶이 풍성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