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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an 25. 2023

자유를 위한 태도

난 미니멀한 삶을 지향하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은 소유를 집착과 욕심으로 해석했는 데 소유를 이 두 가지 포인트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늘 자유롭지 못하다. 삶의 오류는 늘 이렇듯 잘못된 해석에서 기인한다. 소유 그 자체는 잘못한게 없다. 문제는 소유를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과 태도다. 법정스님은 [난]을 기르면서 생기는 집착과 소유욕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난]을 멀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도피 혹은 회피다. 삶을 살면서 자유라는 명분을 위해 무언가로부터 도피하거나 회피했을 때의 결과는 또 다른 구속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도피며 허망할 정도로 나약해 빠졌다. '무소유는 자유다' 라는 말 안에는 진짜 자유가 없다. 진짜 자유는 풀소유를 했음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다. 진정한 현자는 풀소유를 했음에도 자유로울 있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법정 스님이 얻은 [난]에는 잘못이 없다. 문제가 있다면 [난]에 집착한 법정스님의 마음이다. 그럼 고쳐야 할 것은 그 집착이라는 마음이지 잘못도 없는 [난]을 없앨 필요는 없다. 법정 스님은 소유했음에도 집착하지 않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신 것이다. 무소유를 통한 자유는 마치 늘 남탓을 하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책임을 방기하며 어려운 문제는 건너뛰고 쉬운 문제만 풀려는 나약한 어린 아이의 생각이다.


소유를 단순히 욕심과 집착의 대리인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소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자유에 방점을 둬야 한다. 무소유를 통한 자유는 삶이 마이너스로 수렴되고 소유를 통한 자유는 삶이 플러스로 향한다. 소유했지만 집착하지 않는 법. 그걸 깨달으면 우리는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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