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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원리

쓰기의 생각법 6

by 고로케

글쓰기에서 스토리의 기능적 역할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몰입도다. 좋은 스토리는 독자의 집중력을 유지해 글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몰입도 높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원리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그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1살 정도 되면 이야기 놀이를 한다. ‘아니 아직 말 못하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그런 엄마가 있다고?’ 하지만 이 놀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그건 바로 <까꿍 놀이> 다. 엄마나 아빠가 자기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가 ‘까꿍’이라고 말하며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면 아이는 재미있다고 꺄르륵거린다. 이 놀이는 반복해도 아이는 지루해하지 않고 계속 웃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거의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잠깐, 이런 게 이야기라고? 우리는 흔히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이 악당을 만나서 갈등하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단순히 얼굴을 가렸다가 보여주는 것이 어떻게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 납득 안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까꿍 놀이는 이야기의 기본적인 구조를 응용했다. 그 구조란 무엇일까?


일본의 문학 비평가 오쓰카 에이지는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갔다가 돌아온다’라는 패턴이라고 했다. 이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가 예로 든 이야기는 마저리 플랙의 《앵거스와 두 마리 오리》라는 어린이 동화다. 이 동화의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앵거스라는 강아지가 울타리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 두 마리 오리의 소리에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울타리를 넘어서 오리에게 갔지만 오리의 공세에 겁을 먹고 다시 자기 집 소파 아래로 돌아온다.


여기서 울타리 너머는 미지의 세계다. 울타리는 일상과 비일상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앵거스는 오리 소리만 듣기 때문에 울타리 너머의 세계가 궁금하다. 앵거스는 울타리를 넘으면서 이쪽이라는 일상에서 벗어나 저쪽이라는 비일상의 세계를 경험한다. 하지만 앵거스는 오리에게 쫓겨 다시 자기 집 소파 아래로 돌아오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안식처였던 소파 아래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바로 이처럼 울타리라는 경계선을 넘어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이야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다.


그럼, 까꿍 놀이가 왜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얼굴을 가리는 손바닥은 경계선이다. 아이는 엄마가 있는 세계로부터 없는 세계로 갔다가 다시 엄마가 있는 세계로 돌아온다. 아이는 불안과 안도감이라는 드라마틱한 감정을 오고 가면서 느낀다. 그 속에서 아이는 재미를 발견한다. 그럼 갔다가 돌아오기라는 원리를 글쓰기에 적용하면 어떨까?


스토리가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픽션 장르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까꿍 놀이>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토리텔링은 몰입도를 높이는 구조화 활동이다. 따라서 스토리는 소설뿐만 아니라 감상문이나 여행기, 제안서나 보고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리다. 그러기 위해서는 갔다가 돌아오기를 한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확장해서 변용시켜야 한다. 그 중 첫 번째가 유발과 해소다. 무엇을 유발하고 해소할 것인지는 글의 성격과 전략에 따라 다르다. 문제를 유발하고 해소할 수도 있고 궁금증을 유발하고 해소할 수 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글도 유발과 해소의 원리로 구성했다. 이 글의 첫 문단에서부터 그 원리는 아래와 같이 적용했다.


1) 그 원리는 매우 간단한 것에서 시작한다. (간단한 원리가 무엇일까?_궁금증 유발)

--> 까꿍 놀이를 예로 들면서 간단한 원리를 설명 (궁금증 해소)

2) 그런데 잠깐, 이런 게 이야기라고? (이야기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_문제 유발)

--> 앵거스 이야기를 통해서 ‘갔다가 돌아오기’라는 패턴을 설명 (문제 해소)


두 번째는 대립과 허물기다. 이 글의 앞에 쓴 <신선한 관점을 얻는 법>이라는 글에서는 대립과 허물기라는 구조로 글을 썼다. 이 글에서 대립 구조는 아이와 어른, 젊음과 나이 듦이다. 아이는 유사성에 초점을 맞추고 어른은 구별에 초점을 맞춘다고 둘 사이의 사고법을 대립시켰다. 그리고 젊은 사람은 창의적이고 나이가 든 사람은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고정 관념을 대립시켰다. 하지만 대립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아이와 어른의 사고법 차이는 은유를 통해서 허물 수 있고 나이가 든 사람이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관념에 대해서 반박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면 창의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를 제시하면서 젊음과 나이 듦의 대립 구도를 허물었다.


세 번째는 공감과 해결이다. 독자의 상황에 공감하고 그 이후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이런 식의 글쓰기는 상품 세일즈 페이지에서 많이 활용한다. 예를 들어, ---하여 많이 힘드셨죠? 라고 말하면서 고객이나 독자에게 공감하면서 자신의 서비스나 상품을 통해서 해결해준다는 방향으로 쓰는 구조다.


네 번째는 객관과 주관이다. 객관적 원리를 먼저 제시하고 이것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다. 앞에서 <말과 글의 경계 허물기>에서 ‘말하기와 글쓰기의 체계는 근본적으로 같다.’라는 객관적 원리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이 객관적 원리로만 남아 있다면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독자는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 뒤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창작법을 통해서 이 객관적 원리를 어떻게 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주관적 해석을 덧붙였다. 이를 통해서 객관을 주관적으로 볼 수 있고 주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마치, 아이에게 엄마의 까꿍 놀이가 존재와 부재의 원리로 스토리가 되는 것처럼 객관과 주관의 상호보완은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를 만든다.


‘이제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자기 PR에 스토리를 담아라.’ 등 여기저기서 스토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하지만 가끔 그 말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스토리는 소설이나 영화처럼 가상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활동이라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는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본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 자체로만 보면 그 사실은 무색무취하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을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재구성하고 재조립 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다. 자기 안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다. 단지 그것을 스토리텔링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발굴되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이야기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당신이 경험한 대부분은 ‘갔다가 돌아오기’라는 스토리텔링의 원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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