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기 전에는 서론 본론 결론을 구상해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정작 이런 형식에 매몰되다보니 글쓰기 시작이 쉽지 않다. 특히 서론을 어떻게 시작해서 본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 나갈까에 대한 고민은 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오죽하면, 첫 문장을 완성했다면 글을 다 쓴 거나 다름없다고 했을까. 그만큼, 서론은 글쓰기에서 큰 스트레스다. 서론을 쓰지 못해 본론 쓰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형식에 대한 강박은 글쓰기를 가로막는 적이다. 형식을 구상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쓰는 연습을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본론부터 쓰기다. 본론부터 글을 쓰면 효과적이다.
우선 글에 박력이 있다. 작가들이 서론에 신경 쓰는 이유는 글 서두에서 호기심을 유발하여 본론까지 읽게 하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서론은 치워버리고 본론부터 글이 진행되면 글이 터프하고 시원시원하게 느껴진다. 마치, 괴수 영화에서 초반부터 괴물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죽일 때, 이 영화 도대체 뭐지? 라는 놀라움과 충격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서론을 잘 푸는 것보다 본론부터 시작하는 것이 사람들을 매혹하기에 효과가 클 수 있다.
그럼 본론을 써야 할 자리에 무엇을 써야 할까? 여기서 글쓰기의 신비로움이 발휘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 것을 글로 쓴다고 하지만 아닐 때도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생각하지도 않은 방향으로 생각이 파생된다. 글을 머릿속에서만 쓸 때와 직접 타이핑하며 쓸 때의 차이는 엄청나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할 때는 생각 그 이상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똑같은 생각을 글로 타이핑할 때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생각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이건 마치 마법 같다. 생각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또 다른 생각을 잉태하는 느낌이다. 그 이유는 명료한 단어로 생각을 개념화해서 생기는 확장력이다. 개념은 또 다른 개념으로 연결되고 점점 사고의 틀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노래처럼 이어지는 것이다. 생각으로만 머무르면 개념이 명료하지 않지만 글로 옮길 때는 개념화된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난 분명 이런 생각까지 하지 않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현상은 머릿속에서만 생각할 때가 아니라 글로 옮길 때 나타난다. 내가 생각했던 본론은 본론이 아니라 진짜 본론은 따로 있었다는 것처럼 새로운 본론이 떠오른다. 서론에서 풀었던 본론을 더 탄탄하게 뒷받침해주는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서론을 쓰지 못해 글을 쓰지 못했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글쓰기뿐만 아니라 행동이 만든 에너지가 발동시키는 생각의 확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행동이 낳은 경험과 그 경험으로 인한 새로운 피드백 그리고 그것이 생각을 자극하면서 점점 생각의 범위는 확장된다. 하지만 생각으로만 머무를 때는 경험도 모호하고 모든 것이 명료하지 않다. 뿌연 안개 속에서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SNS가 발달하면서 내 생각을 쉽게 써서 올릴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생겼다. 글쓰기에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SNS 시대가 되면서 이런 본론부터 글쓰기 방법이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사족을 떼어 내고 정말 전달하고 싶은 말부터 먼저 전달하는 것이다. 서론을 보고 기다려줄 만큼 사람들의 인내심이 높지 않다.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가 정답일 뿐이다. 형식을 지키느라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이다. 당신이 집중해야 할 것은 형식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자기 생각을 다듬는 작업이다. 형식에 대한 강박을 떨쳐 버리는 게 글쓰기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