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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자극하는 글 쓰는 법

쓰기의 생각법 8

by 고로케

사람마다 ‘재미’라고 느끼는 지점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하품 나오는 작품도, 누군가에게는 배꼽 빠지는 작품일 수 있다. 특히 영화 평론가는 지루한 영화도 재미있게 보는 직업 중 하나다. 한 영화 평론가는 ‘재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재미라는 건 다양해요. 자크 타티 감독의 <윌로씨의 휴가>에서 한 꼬마가 자신과 형이 먹을 콘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들고 가는 장면이 있어요. 꼬마는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쥐고 문손잡이를 돌립니다. 아이스크림은 콘에 위태하게 붙어 있습니다. 사실 아이스크림은 떨어져야 하죠. 하지만 문이 열리고 영화 속 아이스크림은 떨어지지 않은 채 아이는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이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를 재미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재미’를 다시 생각했다. 이전의 나에게 재미는 웃음이나 스릴감을 주는 이야기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난 창작자의 ‘시선’이라는 재미를 발견했다.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의 시선의 층위가 깔리면서 재미를 바라보는 층위가 더 입체적으로 변한 것이다.


당신은 글을 쓸 때 어떤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글을 쓰는가? 당신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글의 재미와 흥미를 높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무시한다. 좋은 글은 시선의 날이 서 있다. 작가의 시선이 보이는 글이 재미있는 글이 될 수 있다. 그럼 어떤 시선이 흥미로울까? 《좋아서, 혼자서》를 쓴 윤동희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믿는 시대의 가치에 역행해야 한다. 뭔가 일어나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생활, 그 생활 속의 작은 행복, 소소한 기쁨, 별것 아닌 즐거움을 말해야 한다. 동시대 한국의 서사를 경유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가치가 떨어진다.(중략)동시대+사회+(그 속의) 나를 기준으로 발견되는 사회, 정치, 문화적 사건과 활동을 배경으로 삼아야 한다.


내가 해석한 윤동희 작가의 말은 결국 작가의 주관적 시선이 동시대적 보편성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주관과 보편성 사이를 잇는 공감대다. 작가에게는 바로 이 공감대를 키우는 능력이 주요하다. 우리의 무릎을 치게 하는 공감은 매우 뾰족하다. 예를 들어 영화 <여자정혜>에서 주인공이 거실에서 TV 보는 장면은 공감이 되지만 매우 뭉특한 보편적인 장면이어서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TV를 보다 거실에 있는 머리카락 뭉치를 손바닥으로 돌돌 밀며 정리하는 장면은 가슴을 찌르는 공감 포인트가 된다. 결국 공감의 설계라는 건 매우 디테일한 것에서 시작한다. 디테일에만 매몰되면 공감을 획득하지 못하고 보편성에만 치우치면 새로울 거 없이 고루하다. 결국 디테일 속에서 보편성을 획득해야 공감할 수 있다.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은 프로 영화감독의 조건을 아래와 같이 말했다.


누구든지 잡을 수 있는 앵글을 잡아라. 하지만 누구든지 네 앵글을 흉내 내려면 고도의 계산 없이는 잡을 수 없는 앵글을 잡아라. 완벽한 앵글을 잡은 다음에 그것을 일관된 계산에 의해 흩트려라. 그것이 프로가 하는 일이다.


이 말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과 맞닿아 있다. 결국 보편성이라는 건 대상이고 디테일이라는 건 시선이다. 보편적인 대상을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대상을 자신만의 디테일한 시선으로 재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이라는 게 보편성을 특수하게 흩트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감대 형성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는 공감 능력을 감정적 영역이라고 생각하나 이성적인 이해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풍부하면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다. 그 감정에 대한 이해력이 좋아야 공감할 수 있다. 마냥 감정이 풍부하다고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공감이라는 건 감정과 이성의 교집합 영역이다. 공감 능력은 감정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감정만 풍부해서도 안 되고 이성만 강해서도 안 된다. 가슴으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머리로 잘 이해하는지에 따라 달려있다. 그래서 이해 없는 공감은 동정이고 감정 없는 공감은 위선이다. 이 줄타기를 잘하지 못하면 메마른 시선이 될 확률이 높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으면서 이런 수상소감을 남겼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였냐면 책에서 읽은 거였지만 바로 앞에 계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의 말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말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이 이제 이해가 간다. 이 말을 풀어서 설명하면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나 시선이 보편성을 획득할 때 그것이 곧 창의성이 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경험의 감각을 예민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좋은 작가의 필수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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