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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는 작가의 글쓰기 재료다

쓰기의 생각법 9

by 고로케

배우 손예진을 다시 보게 된 계기는 영화 <비밀은 없다>였다. 지금까지 로맨스 여배우라는 선입견이 강했는데, 이 작품으로 그녀의 또 다른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도 스릴러와 코미디, 액션, 로맨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기 폭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배우들은 작품마다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배우는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서 자기 안의 감정과 성격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자기 안에 숨어있던 감정을 역할에 투영하여 연기를 하는데, 그 작업은 배우들에게는 일상이나 다름없다. 배우가 아닌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기 힘들다. 살면서 연쇄 살인마가 되는 경험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배우들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작업을 한다.


배우는 늘 자신을 비워두고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자신을 캐릭터로 채운다. 배우가 역할을 연기한다고 해서, 그 배우와 역할을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정우가 연쇄 살인마를 연기한다고 해서 하정우를 연쇄 살인마로 생각하지는 않듯이 말이다. 관객은 배우가 척 할뿐 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하지만, 작가를 보는 시선은 다르다.


사람들은 작가의 글과 작가가 같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글은 작가의 정체성이 반영되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작가도 배우와 같다. 배우가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기와 다른 역할을 투영하듯이, 작가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기와 다른 가면을 쓴다. 그래서 글로만 보던 작가를 실제로 만나서 얘기해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이 생각했던 작가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껴서다.


작가 안에 다양한 페르소나가 있다는 것은 좋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정체성만으로 글을 쓴다면 다양한 독자를 만족하기 힘들고 금방 한계가 드러난다. 배우와 마찬가지다. 다양하고 양질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자산이며 입체적인 글을 쓸 수 있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서를 모아야 한다.


정서는 주관적이다. 글은 이 주관적인 정서를 객관적인 결과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건 객관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그 글이 안고 있는 정서다. 난 그 정서를 촉매제 역할로 하여 나만의 방법으로 그 정서를 해석한다. 그렇게 해석된 정서를 토대로 결과물을 창작한다.


정서를 참고하는 것만으로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남이 만든 좋은 정서를 포착하되 그 정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해서 표현해야 한다. 좋은 배우는 정서의 스펙트럼을 잘게 쪼개서 내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표현한다. 명배우는 타인의 연기를 얼굴 근육과 표정, 제스처를 그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 단지 그 정서만을 따라 할 뿐이다. 명배우가 연기하듯 나만의 글을 써야 한다.


정서를 다루는 작가의 자아는 어떤 상태여야 할까? 작가는 단단하고 강력하고 자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럼 작가에게 강력한 자아란 무엇일까? 자신만의 정체성과 개성이 남보다 뚜렷한 것이 강력한 자아일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강력한 자아는 자신을 텅 빈 '공'(空)의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자아가 강하다는 건 늘 자신을 잃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상황과 사람에 따라 변화할 수 있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은 웬만큼 자아가 강하지 않고서는 그러기가 힘들다. 그렇게 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자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없다면 힘들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내가 없다는 건 그 텅 빈공간 만큼 자신의 자아가 차 있다는 말이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 집에 기르던 강아지 바둑이는 매일 집 밖을 나갔다. 하루, 이틀, 삼일 어떨 때는 1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바둑이를 찾지 않았다. 할머니와 삼촌은 "알아서 찾아온다."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둑이는 제 발로 집을 찾아왔다. 바둑이가 제 발로 집에 찾아올 거라는 할머니의 믿음처럼 상황에 따라 나의 자아가 가출해도 나의 코어는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돌아올 거라는 믿음만큼 가장 강력한 자아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 안에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는 건 그만큼 자기에 대한 컨트롤 능력과 메타 인지가 높다는 뜻이다. 타인 때문에 나의 자아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만큼 나의 강력한 자아를 증명하는 건 없다. 작가라면 필요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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