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생각법 10
총 554페이지에 달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보면 346페이지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크리스티는 회고 절정에 해당하는 그 시기의 기억에 한 해당 10페이지 이상을 할애한다. 반대로 55-75세에 해당하는 1945-1965년의 이야기는 불과 23페이지 안에 다 펼쳐 놓는다. 1년에 1페이지가 약간 넘는 분량이다.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려운 선택도 쉽게 할 수 있을 거 같고 주저하던 도전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고구마 한 박스가 삶의 원동력이 된 거 같았다. 배는 굶지 않을 거라는 내 삶의 마지노선이 해결되자 그까짓 거 실패하더라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한 시간 뒤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내일을 기약하며 살 수 없다. 하지만 한 달, 일 년, 십 년 뒤의 끼니가 보장된 사람은 십 년 후의 삶을 내다보며 오늘을 여유롭고 도전적으로 살 수 있다. 내 상황이 끼니를 거를 만큼 최악이 아니라 생각한다면 또 다른 내일을 주저 없이 약속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란 지독하게 나쁜 기억도 문학적 자산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신적 연금술사이지만, 없는 기억으로부터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