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문장을 쓰는 법

한 문장 쓰기 _ 3

by 고로케

당신은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본 영화에 대한 리뷰일 수 있다. 혹은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 리뷰일 수 있다. 하지만 막막하다. 도대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내 마음에 무언가가 콕 들어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 무언가의 형태는 파편처럼 형체를 알 수 없이 깨져 있다. 내 마음속 무언가의 실체를 모르니 글로 풀어낼 수 없다. 글을 쓰려면 이 알 수 없는 실체를 명료화해야 한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깊이 생각하는 것과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 끗 차이다. 누군가는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그것을 깊이 있게 생각한다고 착각한다. 복잡한 생각과 깊이 있는 생각의 차이는 뭘까?


복잡한 생각은 여러 생각의 파편들이 깊이 있게 내려가지 못하고 생각의 표면 위에 머물면서 넓게 흩뿌려진 상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을지 난감해한다. 반면에, 깊이 있는 생각은 역삼각형 모양이다. 생각의 꼴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뾰족해진다. 생각의 포인트들이 생각의 표면 위에 넓게 방사되어 있지 않다.


먼저 생각을 명료화하기 위해서는 흩뿌려진 파편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야 한다. 생각의 파편들을 이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파편들을 단일한 키워드로 재정립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러 파편을 어떻게 하나의 키워드로 뽑을 수 있을까?


당신 앞에 [두부, 양파, 마늘, 고춧가루, 물, 김치] 라는 재료가 있다. 당신이 여기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뽑는다면 무엇을 뽑겠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이 김치를 뽑을 것이다. 그것이 핵심 재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워드를 뽑는다는 활동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선택하는 작업이 아니다. ‘카테고리를 설정’하는 작업이다. 그럼 다시 여섯 가지 재료 중에서 카테고리 설정 작업을 한다면 어떤 키워드가 추출될 수 있을까?


‘찌개’가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김치를 키워드로 뽑았다면 그것이 김치찜이 될 수 있고 김칫국이 될 수 있고 김치볶음밥이 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생각의 표면이 이것저것 넓어지기만 할 뿐 명료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찌개로 키워드를 뽑는다면 ‘김치찌개’만이 도출될 수 있다. 생각이 더 명료해진다. 이 방법론을 실전 글쓰기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예전에 난 아르코 미술관에서 진행한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라는 전시를 보고 리뷰를 쓴 적이 있다. 이 전시에는 소리를 이용한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이집트 당국이 폐쇄한 인터넷을 대신해 음성 메시지를 교환했던 전화기, 일정한 박자로 박동하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 스피커, 망치 모양의 마이크로 벽을 쿵쿵 치는 기계 예술품 등 많은 소리 예술품들이 있었다. 다양한 작품 수만큼 작품들이 전하는 주제도 각양각색이었다. 이것들을 단일한 키워드로 설정하여 감상문을 써야 전시의 주제가 분명해진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내가 이

전시를 보고 떠올린 생각의 파편들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 <공중분해>, <시체>, <유령>, <흔적>, <찌라시>, <깨진 껍데기> 내가 떠올린 다양한 생각의 파편들로는 이 전시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전시만이 지닌 특별한 주제를 뽑아내야 했다. 나는 이 전시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이렇게 뽑아서 설명했다.


사운드의 잔해


난 ‘잔해’라는 키워드로 전시의 주제를 뽑아 글을 썼다. 잔해는 있지만 없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그 가치가 다한 것을 말한다. 이 전시가 보여준 작품들은 모두 그러했다. ‘포섭되지 않고 흩어지는 소리들’, ‘지지직거리며 복원한 사운드 음향’ ‘단발의 타격음을 내고 사라진 소리의 시체’ 그것들은 잔해라는 키워드로 전시를 재정립하여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잔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지 생각하지 못했다. ‘잔해’라는 키워드만으로 주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잔해’가 이 전시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 전시는 잔해다. 왜냐하면 ---------- 하기 때문이다.>


이 전시가 잔해라는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면 자연스럽게 주제는 도출된다. 내가 설명한 방식은 이렇다.


<이 전시는 잔해다. 왜냐하면 흔적을 통해서 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어떤가? 키워드를 풀어서 설명하니 한 문장으로 이 전시의 메시지를 설명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이 전시설명을 원한다면 난 아마 위 문장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제문장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명료한 생각을 할 수 없다. 파편처럼 흩어진 생각들을 숙성시키면서 간추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편들을 한 자루에 모을 수 있는 카테고리를 설정 해야 한다. 카테고리 키워드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부터 글쓰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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