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단 쓰기 _ 1
요즘 트로트붐의 이유 중 하나는 노령화다. 젊은 세대 보다 노령 인구가 차츰 늘다 보니 트로트에 대한 수요가 과거 보다 확실히 많아졌다. 과거에는 30살이면 인구 중심축이며 어른이었지만 이제는 50대가 인구 중심축이며 30대는 아직 젖비린내 아이 소리를 듣는다. 이게 비단 트로트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고령화로 인한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TV 예능만 봐도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같은 메인 MC들의 근속 년 수는 20년을 뛰어넘는다. 유재석이 동고동락에서 첫 메인 MC를 본 게 20대 중후반인데 요즘 예능에서 20대에 메인 MC를 하는 예능인은 거의 없다. 지금 떠오르는 신진 예능인은 이용진이나 양세찬, 박나래, 장도연 정도인데 이들도 나이가 이미 30대 후반이며 뭔가 메인이라고 하기에는 약하고 메인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친다.
사람들은 디테일을 맹목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나 디테일이 중요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하이퀄리티를 추구하는 패러다임에 속해 있다면 디테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양적 패러다임에 속해 있다면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다. 질의 비중이 높으면 그만큼 디테일도가 높고 양의 비중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디테일도가 낮다. 마치 프리미엄 옷매장은 티끌이 미의 균형을 단번에 무너뜨리나 시장에서는 디테일 보다는 옷의 양이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사이언톨로지교 종교 집회가 있다면 흡사 사운드 아트 공연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삐익- 삑 거리는 전자음, 출처 불명 소음 덩어리는 외계인과의 교신음 같고 사운드 아티스트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감상자들은 집회에 모인 신도들과 비슷해 보인다. 사람들은 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이 소리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해석할까? 기회가 된다면 물어보고 싶다. “이거 왜 들으러 왔어요?”
로봇의 예술은 어디까지 인정받을 수 있을까? 현재 로봇의 예술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미래에는 자연스럽게 쌓인 인공지능 문화의 토대 위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술의 인정 여부는 현재로 성급하게 소환하여 다뤄야 할 문제라기보다, 인공지능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