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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ul 31. 2019

영화 와일드 _ 하이킹과 플래쉬백, 그 상념의 순간들

플래쉬백이 주는 영화적 효과



이 영화는 딱히 스포라고 할 게 없어서 편한 마음으로 리뷰를 작성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영화의 내용은 네이버 줄거리에서 설명한 게 전부다. 전형적인 할리우드식의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구조와 반전도, 선과 악의 대립도 없다. 단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셰릴은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와 내면 혹은 험난한 PCT와 대결한다. 감독은 이러한 대결 방식의 가장 적합한 기법으로 플래쉬백을 선택한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PCT의 길, 다시 말해 시작과 끝이 분명한 선형적이 이 공간은 플래쉬백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고의적으로 교차시키면서 비선형적으로 재현한다. 극적인 형식의 대립, 이 영화가 표현하는 생에 대한 의지는 바로 이러한 충돌의 형식을 통해서 그 감정이 더 극화되는 듯하다.


일직선으로 뻗은 선형적 공간은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와 교차하는 비선형적 공간이 된다.


더욱이 이 작품은 셰릴이 PCT 여정 속에서 겪는 육체적 고통과 과거의 정신적 고통이 함께 맞물리면서 점점 이 고통이 용해되어가는 과정이 아주 볼만한다. 전체적으로 와일드는 고통과 휴식, 긴장과 이완을 PCT 루트를 통해서 영화적 형식으로 끌어들였다. 셰릴이 위험에 빠지고 고통을 겪을 때마다, 그녀를 도와주던 사려 깊은 사람들과 꿀맛 같은 휴게소 그리고 자연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마저도 안도의 숨을 돌릴 여유를 주기도 한다. 따라서 그녀가 지금 현재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고통은 PCT 여정 위에서의 스테이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 고통 이후에는 휴식이 찾아온다. 이 단순한 명제 속에서 그녀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더욱 단단한 주물로 변화한다.


고통과 휴식, 긴장과 이완을 PCT 루트를 통해서 영화적 형식으로 끌어들였다.


PCT 간간히 등장하는 우체국은 그녀가 과거를 목도하는 직접적인 순간이다. 전 남편이 소포와 편지를 보내주고 그것을 받는 이러한 일정한 루트는 그녀의 여정이 과거와 병행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감독은 현재와 과거의 병치를 '고통'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로 교묘 하게 디졸브 시킨다. 이 병행이 점점 퍼즐로 맞춰지면서 영화는 그녀가 걸어야 하는 명분을 더욱더 확실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영화는 과거 - 현재의 병치에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는 셰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지점은 바로 타인에 대한 셰릴의 강렬한 의지다.


과거와 병행하고 있는 그녀의 여정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늘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던 셰릴이 PCT 위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인연을 만들어 나갔다는 점이다. PCT는 그녀가 홀로 일어서기 위한 발판이라기보다, 오히려 이 곳에서 그녀는 타인을 강렬히 그리워하며 교감을 원한다. 이것은 그녀가 의식하지 못한 채, 그 길이 그녀에게 선사한 작은 선물이다. 왜 셰릴은 그동안 잊고 살았을까? 셰릴은 그 길 위에서 하이킹을 완주하는 것이 목적이었겠지만 사실 어떤 대상에 대한 강렬한 동기와 의지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타인에 대한 의지는 곧 낙관적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타인을 그리워하며 강렬히 원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녀가 PCT 결승선을 통과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정의 끄트머리에서 영화는 모든 걸 보여주지 않고 갑자기 끝이 난다. 모르긴 몰라도 부지불식간에 끝나는 이 엔딩이 마음에 든다. 어차피 인생은 반듯한 기승전결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아마 완주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가 완주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 영화에서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미래의 포부는 보여줬다. 그녀는 이 여정 속에서 충분히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증오한다. 마지막은 관객의 몫이다. 당신에게 이 PCT 길 마지막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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