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고 숨겨진 혈통의 가치를 봉합하다
영화 ‘디센던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와이 군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여러 개로 갈라진 하와이의 섬들은 이 영화의 주제를 의미하는 지리적 텍스트다. 영화 속 맷은 총 3가지 공간을 이동한다. 첫째, 스코티와 함께 거주하는 호놀룰루, 두 번째, 맏딸 알렉스의 기숙학교 그리고 세 번째, 조상 대대로 내려온 라우아이 섬이다. 이러한 섬과 섬 사이의 이동은 단절된 가족의 심리적 거리감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수 백개의 섬으로 찢어진 하와이 군도는 여러 민족과 문화가 용해된 하와이 특유의 사회적 특징도 내포한다. 영화 초반 스코티가 짓궂은 문자 메시지를 보낸 친구도 혼혈아다.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러 문병 온 스코티 친구도 혼혈에 가깝다. 이렇게 다양한 혈통과 문화는 경직되고 배타적인 미국 본토보다 자유분방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핏줄이라는 중심 된 가치가 없어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어쩌면 은폐된 가족의 가치와 혈통을 은유적으로 복원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맷이 라우아이 땅의 매각을 결정할 때, 그의 사촌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땅은 오래전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온 땅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전통이며 원형적 혈통을 상징한다. 그 땅은 함부로 처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신중히 자신의 핏줄과 상의하고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도 혈통은 매우 중요한 전통적 가치이며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는 대립하여, 맷의 가족은 잃어버린 현대 사회의 가족을 의미한다. 맷은 자신의 사촌과 일정한 혈통의 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가족원 간의 유대는 단절되어 있다. 맷은 이 두 가지의 대립 선상 즉, 전통과 현대, 유대와 단절이라는 대립적 상황 위에 두 발을 걸치고 있는 캐릭터다. 그 와중에, 식물인간이 된 아내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아내는 식물인간이다. 그녀는 살아있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다. 이 상황에서 카메라는 병실에 누워있는 아내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 클로즈업은 맷 가족의 시선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선 그녀의 얼굴에는 죽음도 삶도 없다. 텅 빈 그녀의 얼굴을 대면하는 가족은 그 얼굴 속에 자신을 투영하여 삶과 죽음 경계가 갈라놓은 단절의 위기를 직접 체감한다.
단절의 위기감은 강한 결속력을 불러일으킨다. 브라이언 스피어를 찾겠다는 목적은 이 영화에서 맥거핀에 가깝다. 그것은 결코 중요한 목적이 아니며 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영화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카메라는 롱샷을 주로 사용하며 그들의 결속을 가시화한다. 전반부에는 카메라가 숏트 – 리버스 쇼트를 사용하며 맷과 알렉스를 번갈아 잡아낸다. 이는 서로 간의 심리적 거리와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맷과 알렉스를 한 프레임 안에 담는 롱샷을 사용하여 그들 사이가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롱샷으로 한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잡는 카메라는 이들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워졌는가를 확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롱샷은 구성원끼리의 단절된 거리감을 하나로 봉합하는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과 맷의 일행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봉합하기도 한다. 맷은 처음에 하와이는 천국이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 하와이라는 공간은 일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떠난 하와이 군도는 어느새 자신과 가족을 되돌아보는 일탈의 공간이 되었다. 자신에게 하와이는 이국적인 휴양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 하와이도 낯선 공간이 된 것이다. 롱샷은 바로 그러한 개인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이국적인 풍광으로 한 폭 안에 담아낸다.
시드의 등장은 영화 속에서 웃음뿐만 아니라, 맷의 혈통 외부에 존재하는 타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맷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시드는 우스꽝스러운 시각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것이 영화 속에서 가져다준 효과는 맷이 시드를 통해 자신의 가족을 반추한다는 점이다. 타자가 자신의 가족 일에 개입한다는 점은 껄그러운 일이지만 그는 시드를 통해 자신의 가족에 대한 생각을 토로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시드는 관객의 입장을 대변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한다. 관객 또한 타자로서 맷을 바라보는 이상, 우리는 시드의 시선과 더욱더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로드 무비가 다 그렇듯 어디를 향해 가는지 보다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며 길을 걷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맷의 일행은 그 길 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땅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그간 은폐된 혈통과 가족에 대한 가치를 복원하겠다는 선언이자 영화적 의도다. 아내를 떠나보내는 그에게 그 땅은 마지막으로 자기가 지켜야 할 보루다. 무언가를 지켜 나가는 것은 떠나보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전통과 현대, 유대와 단절이라는 선상 위에 놓여있던 맷은 이 여정으로 전통과 유대라는 가치에 편입하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