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소나 카피라이터

글심(心) _2

by 고로케

아마 가장 전문성을 의심받는 직업 중 하나를 꼽자면 카피라이터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대충 글 몇 자 끄적이고 돈 받는 직업이 카피라이터라 생각합니다. 일단 카피라이터는 진입 장벽이 낮아 보입니다. 글을 쓰고 읽을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엔지니어처럼 기술력을 요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의학처럼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닌 거 같고요. 그래서인지, 그런 건 나도 하겠다 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합니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전문성과 정체성이 고민되는 지점이 바로 그때이죠. 난 저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 난 나만의 강점이 무엇일까?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15음절의 문장은 에이스침대라는 브랜드를 먹여 살린 카피입니다. 이 이후에 우리가 가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반면에, 저런 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마치 현대미술에서 어지럽게 붓칠을 휘갈긴 추상화를 보면서 '저게 그림이야? 저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라고 콧방귀를 뀌듯 말이죠.


클라이언트로부터 캠페인 슬로건을 제안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클라이언트의 요구 조건과 포인트에서 맞춰서 몇 개 안을 짜서 PT를 했습니다. 우리의 PT가 전부 끝나고 클라이언트는 '저런 슬로건보다는 차라리 이런 슬로건 가는 게 어떤가?'라고 PT 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냈습니다. 그 사람은 이 캠페인의 최종 책임자이므로 가장 윗선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안은 묵살되고 클라이언트가 낸 슬로건으로 캠페인은 진행되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의견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크리에이티브라는 것이 꽤 주관적입니다. 아무리 이 슬로건의 좋은 점을 나열하고 비교 설득을 해도 '음... 그래도 난 좀 별론데.' 이 한 마디면 객관적 데이터가 모두 무시된다는 점이죠.


이제 사실 카피라이터는 일종의 '콘셉트 라이터'라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단순히 광고문안을 쓰는 것이 카피라이터의 일이 아니라, 캠페인이나 콘텐츠의 콘셉트를 도출하고 제작자와 조율하는 기획자로서의 역할이 훨씬 크기 때문이기도 하죠. 광고 콘텐츠의 전반적인 제작을 담당하고 책임진다는 점에서 카피라이터라는 명칭은 다소 한정적입니다.


개나 소나 카피라이터라는 말은 자조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고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확실히 다양한 영역으로 파생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헉 소리가 나올 정도의 크리에이티브라면 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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