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20살 때 운동권 선배따라 집회에 간적 있다. 그곳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횃불은 든 사람들이 운동장에 보여서 전투적인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요지는 세상을 뒤엎고 혁명하자는거다. 혁명, 20살 때는 그 단어가 주는 울림이 컸다. 지금은 혁명에 대한 관점이 바꼈다. 혁명이 꼭 가난한자가 부유한자를 뒤엎는 게 아니다. 혁명은 전제를 바꾸는 거다.
예를 들어, 내 학창시절 두발은 짦은 스포츠가 기준이다. 머리카락을 주먹으로 잡아서 잡히면 걸리는 거다. 이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두발 자유화의 전제는 머리카락이 누워서 이마와 뒷머리, 구렛나루를 덮을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그 정도면 두발 자유화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 전제가 바꼈다. 펌이나 염색까지 가능하도록 한쪽 극단의 전제 기준이 달라졌다. 난 이게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두발 자유화를 바라보는 전제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혁명이나 혁신을 외칠 때 창조적 파괴니 어쩌니 하면서 기존의 것을 다 때려부수고 새로 짓자라는 마인드는 고루하다. 그냥 기존 극단에 있는 기준을 몇 cm 만 한 발짝 옮기면 된다. 애플이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단지 통화나 문자를 하는 게 폰이 아니라 폰이 할 수 있는 전제 기준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제 가스통 들고 햇불들고 화염병이나 던지는 게 혁명이 아니다. 누가 생각지도 못한 최극단의 기준점을 셋팅하냐이다.